신 시장 규제정책 틀(로드맵)이 소비자 편익을 위해 소매 시장 자율성을 강화하는 형태로 방향을 잡으면서 정부의 경쟁정책이 딜레마에 빠질 개연성이 커졌다. 특히 소매 시장 규제 완화와 함께 통신사업자 간 거래관계를 통제하는 ‘도매규제’를 수면으로 끌어내면서 경쟁정책 기조가 당분간 ‘설비 기반’과 ‘서비스 기반’ 사이를 갈팡질팡할 전망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2002년 이후로 설비 기반 사업자에게 ‘사전규제’를 적용해 회계분리를 의무화하고 통신 시장의 경쟁 수준을 평가해 정책에 반영하는 등 서비스 기반 경쟁정책으로 중요도를 조금씩 옮겨왔다. 이번 정책도 같은 선상에 있다.
도매규제를 통해 시내·이동전화 재판매를 의무화하고, 선발 사업자 시장 지배력의 원천인 통신설비(망·주파수 등)를 후발 사업자가 원가에 쓸 수 있도록 해 경쟁 촉진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 기조가 기존 사업자의 투자 의지를 꺾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노준형 정통부 장관은 이와 관련, “재판매 의무화 등 도매규제가 경쟁 촉진에는 큰 효과가 있지만 기존 사업자의 투자 유인을 저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장관은 또 “최근 통신 시장은 광대역통합망(BcN), 비동기식 3세대 이동통신(WCDMA) 등에 대한 신규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투자위험을 부담한 기업이 투자에 따른 과실을 가져갈 수 있도록 ‘설비 기반 경쟁정책 기조’를 당분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시장 자율적인 재판매 활성화 정도, 통신망 투자 추이, 요금인하 정도 등 시장 상황을 지속적으로 살펴 도매규제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시각은 정책 중심축을 사업자에서 소비자 편익으로 옮겨가기로 방향을 잡았으되 섣불리 큰 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나아갈수록 투자 등을 통해 시장 발전에 기여한 사업자를 정책적으로 보호하는 막이 얇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차세대 유무선 통신서비스를 위한 신규 투자가 정성적으로 3년이나 늦어진 가운데 도매규제를 비롯한 시장 경쟁촉진 방안이 ‘자율적 투자유인책’으로 연결될 것인지가 주목거리다.
시장 경쟁이 격화하면서 사업자들은 마케팅에 온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회수가 불투명하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투자를 가급적 늦추거나 아예 안 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규제정책 개편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매년 7조원 상당의 민간 투자를 유발해 BcN과 같은 미래 통신 환경을 구축하려는 정부 계획에 호응하는 만큼 최소한의 기대수익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새로운 투자 수요를 정부가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는 요구도 업계 일각에서 나왔다.
광가입자망이나 HSDPA와 같은 차세대 통신 투자 분야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의 대규모 네트워크 구축 프로젝트에 통신사업자를 참여시키는 방안이다. 통신사업자로서는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으며,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통신사업자의 노하우를 더욱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 ‘윈윈’ 할 수 있는 구조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