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일 야당인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지난 1993년 출간한 ‘보통국가론’에서 일본의 재무장을 강조한 ‘보통국가론’을 처음으로 주창했다. 그는 원래 자민당의 핵심파벌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간사장 자리에 올라 한때 ‘자민당의 황태자’로 불리기도 했으나, 지난 1993년 탈당해 비자민연립정권인 호소카와 내각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베 신조 총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그의 ‘보통국가론’은 지금은 일본 우경화의 상징적인 용어가 됐다.
최근 스웨덴 정부가 발표한 부유세 폐지 방침도 국가의 성격 규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일본의 보통국가론과 맥이 닿아 있다. 스웨덴 싱크탱크인 팀브로연구소의 마리아 랭카 회장은 “스웨덴의 부유세 폐지는 ‘정상적인 국가(normal country)’로 이행하기 위한 또 다른 발걸음”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일본의 보통국가론이 군사력의 온전한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면 스웨덴의 정상국가론은 경제시스템의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웨덴의 경제시스템을 왜곡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스웨덴의 부유세는 사민당 정부가 지난 70년간 유지해온 제도다. 순재산이 150만크로나(20만달러) 이상인 개인을 대상으로 1.5%의 부유세를 부담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부유세는 기업가들의 자국 내 재투자를 막고 벤처 생태계 전반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부유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무려 5000억크로나(약 66조9600억원)에 달하며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비율이 25개 EU국가 중 18위에 불과하다는 통계수치는 스웨덴 경제계가 처한 고민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정상국가가 아니라는 자조가 나올 법도 하다.
결국, 작년 9월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연합의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는 부유세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부유세가 폐지되면 자본의 해외 탈주 현상이 줄어들고 여유 자본이 기업의 설비투자나 벤처기업들에 재투자돼 경제 생태계 전반이 자생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과연 스웨덴의 부유세 폐지가 경제계에 어떤 효과를 몰고 올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웨덴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과연 정상국가일까? 일단 분단국가라는 특수상황은 논외로 치자. 기업의 관점에서 보는 우리나라는 정상국가라는 스펙트럼의 맨 끝자락에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엄살이 아니라 정말 기업하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냥 내뱉는 말이 아니라 아주 절박하다. 수도권 규제, 총액투자규제, 환경규제, 상속규제 등 온갖 규제가 촘촘하게 엮여 기업의 목줄을 죄고 있다.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인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경영자들 가운데서는 자식들에게 힘든 사업을 물려주기보다는 기업을 정리하고 부동산 투자나 하는 게 낫겠다는 자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역대 정권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흰소리를 했지만 별반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동남아 금융허브·물류허브·경제특구 등 온갖 장밋빛 청사진이 공중에서 흩날리고 있다. 위기의 징후를 뼛속 깊이 인식하고 있지만 모두 손발이 묶여 가위눌린 형국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근 진통 끝에 한미 FTA가 타결됐다. 많은 사람이 한미 FTA가 한국경제에 활로가 돼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의도 느껴진다. 한미 FTA 체제에 진입하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고 한다.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 기업하는 사람의 의욕을 북돋워주는 일부터 시작하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규제를 하나하나씩 풀어나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자. 정상국가로 가기 위한 노력은 우리도 해야 한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
◆장길수 논설위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