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마침내 타결돼 이에 따른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시점에서 정보통신 시대의 핵심 부품이자 ‘산업의 창’으로 불리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그 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한국과 미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을 살펴보면 한국이 LCD·PDP와 디지털TV 등의 완제품을 수출하고, 미국은 핵심 제조장비·부품소재를 수출하는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FTA가 체결되면 4.5∼5%의 대미 수출관세가 없어져 TV용 LCD·PDP에 대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 수출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장비재료의 관세도 없어져 국내업체의 생산원가 절감 효과도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수출입 증대 효과를 뛰어넘어 한미 FTA는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에 커다란 파급효과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은 외형적으로는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나 수출은 주로 패널 대기업에 의존하고 핵심원천 기술이 부족해 장비재료 산업이 취약하다. ‘가마우지 경제’라는 말이 있는데, 국제 분업 속에서 취약한 수출구조로 인해 실익을 외국에 빼앗기는 우리나라를 가마우지 새를 이용한 낚시에 비유한 것이다. 디스플레이 장비재료는 국산화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장비는 50%, 재료는 80%에 이르렀으나 핵심 부분품 및 원재료를 여전히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 FTA는 그동안 취약점으로 지목돼온 디스플레이 장비재료산업을 보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미국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장비재료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기술협력을 통한 선진기술 도입이 확대될 것이다. 실례로 광학기술 등의 원천기술 부족으로 우리가 아직까지 국산화에 성공하지 못한 노광기의 경우 한국의 장비업체와 미국 광학전문 기업이 협력해 장비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FTA가 체결되면 이러한 상호협력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에는 장비 완제품을 생산하는 주요 업체가 서너 개에 불과한 반면에 장비에 들어가는 핵심부분품을 개발·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상당수 있어 우리나라와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직접 경쟁하는 산업구조가 아니므로 기술개발 등 상호 보완적 협력이 가능하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적 위치는 매우 중요한 바를 시사한다. 최근 디스플레이 산업은 한국과 그 주변국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중화권은 패널 생산에서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고 일본은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디스플레이 장비재료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장비재료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국에 넘겨준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러한 때에 미국과 FTA 체결로 패널 수출 확대를 통한 생산 증대와 장비재료 수입처 다변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다면 주변 경쟁국의 공세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또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로 미국 기업의 R&D센터 및 생산공장 국내 설립을 촉진해 핵심 장비재료의 국내 생산증대 효과와 수출 확대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디스플레이 산업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대만·중국 동북아시아 4개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분야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은 주변국의 거센 도전을 미국과의 FTA를 통해 물리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됐다.
작년 한 해 동안 디스플레이 산업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올해 한미 FTA 체결이 산업의 활로를 모색하고 디스플레이 업계가 다 같이 노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패널산업은 세계시장에서 리더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장비재료산업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향후 디스플레이 코리아의 기치를 드높이기 위해 미국은 상생(相生)의 동반자로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번 FTA가 한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이 세계 1위를 굳건히 유지하는 초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석태 한국디스플레이장비재료산업협회장·케이씨텍 대표 stkoh@kcte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