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전략 없는 대규모 IT사업 제안 비용 부담 크다

 대규모 정보기술(IT) 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하는 발주기업이 사업자선정 과정에서 참여 사업자들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부담을 지우고 있어 IT업계 수익구조 부실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업계 최대 IT프로젝트인 KB국민은행의 계정계 시스템 기술방식 결정을 위한 벤치마킹테스트(BMT)가 시작된 가운데 참가기업인 IBM과 HP는 이를 위해 각각 20억여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차례에 걸쳐 BMT를 하는 바람에 회사별로 60억원 이상의 비용 부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BMT 과정서만 비용부담 ‘눈덩이’=메인프레임과 유닉스시스템의 성능을 비교하기 위한 이번 BMT는 국민은행측이 성능요건을 제시하면 참가기업들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에 맞는 시스템을 구성해 대용량 처리기능, 신뢰성, 안정성 등을 평가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참가기업들은 서버·스토리지·네트워크·애플리케이션 등을 자체적으로 구입하거나 임대해 설치하는데 4∼5개월의 기간과 20억∼3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BMT가 40∼50개 항목으로 이뤄진 비슷한 평가기준으로 지난 해부터 벌써 3회째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번 입찰을 위해 BMT에만 회사별로 60억원 이상을 들이는 셈이다. 이 비용은 IBM, HP뿐 아니라 여기에 제품을 공급하는 중소업체가 함께 나눠 지게 된다.

 ◇비용부담이 사업자 부실로 이어져= 중소 보안업체인 A사는 지난 해 국내 한 통신대기업에 침입방지시스템(IPS)을 납품하기 위한 BMT 참가비용으로 3억원을 투입했다. 트래픽제네레이터와 탐지기, 네트워크 스위치 등 평가환경을 구축하고 여기에 인건비와 기회비용까지 합치면 3억원이 소요된 것. 비용은 A사가 모두 부담했다.

 비용을 부담한 만큼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선정되려 하게 되고 게다가 기술검증 결과가 가격협상에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부실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A사 측은 “이렇게 하고도 사업에서 떨어지면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입찰 가격을 낮춰서라도 반드시 사업을 따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발주기업 IT전략 부재가 원인= IT업계는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해당 기업의 IT전략 부재를 꼽았다.

 발주기업이 구체적인 IT전략을 세우지 않고 사업자 선정 절차부터 시작한 뒤 제안 내용으로 전략을 완성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전략을 변경하거나 아예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RFI로 관련 정보를 업체들로부터 받은 뒤 자체인력으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반칙 플레이’도 등장했다.

 사업자 선정의 공정성만을 강조하다보니 쉽게 선정하지 못하고 중간절차만 반복하는 것도 원인중 하나로 꼽힌다. 세차례 제안서만 받고 가격협상 과정에서 모두 결렬시킨 새마을금고 차세대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IT기업의 한 관계자는 “공정성을 빌미로 과도한 경쟁을 시키는 바람에 비용이 늘어나게 되고 오히려 사업자 선정후 구축과정에서의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합리적 선정 방법 도입해야= 무조건적인 BMT보다는 다양한 검증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미 현장에 도입돼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별도의 BMT없이 기존 구축사례를 통해 검증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술검증 결과를 가격협상 등에서 반영하는 공공부문의 제안서 보상제도와 같은 제도 보완도 요구했다. BMT 등을 통해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았으면 이를 가격경쟁에서 가점요소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 한 관계자는 “발주기업은 IT서비스, 솔루션 업체들을 상주시키며 지속적인 보완을 하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 효율적인 시스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업제안서 요구 시점부터 구체적이고 명확한 계획을 세워야 상호간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