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상 계속돼 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이냐 결렬이냐의 기로에 섰던 지난달 말,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을 것이다.
양국 간 경제적 측면의 경계를 허무는 협상이다 보니 국민이면 누구나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너와 나 구별 없이 협상 당사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딱히 협상과 직접 관련되는 위치에 있지 않은 나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과거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경제 이론에 따르면 자유무역은 언제나 사회적 후생을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한미 FTA에 대해 적지 않은 국민이 염려하고 있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후생 개선이 이루어지더라도 개별적으로는 피해를 보는 부분이 있다는 현실일 것이다. 협상이 타결됐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어깨가 홀가분해 보이지만 않는 것도 이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제 정부는 한미 FTA에 대해 적지 않은 국민이 지니고 있는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후속조치 마련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만이 험로가 예상되는 국회의 비준 절차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이 될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협상 결과들을 보면 국제특급배달서비스의 경우 종전에 무역 관련 서류 등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던 것을 국제서류를 추가로 개방, 자유화했다.
또 특급배달서비스 분야를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소송(ISD)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우편사업을 줄곧 지켜보아 온 나는 이번 한미 FTA 우편분야 협상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통합과정에서 우편시장의 급속한 개방을 실현한 유럽연합(EU)과는 달리 한국과 미국은 공히 우편 분야에 대해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의 고수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규율하기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음이 사실이다.
일례로 한국과 미국은 보편적 우편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서장 또는 신서 취급 전반을 우편사업자의 독점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급속한 통신환경 변화로 서장 또는 신서가 무엇을 말하는지 불분명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독점 설정이 과연 실효성을 지닌 것인지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내가 기억하기에 한국과 미국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우편사업의 전통적인 제도에 대해 정비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우편 정책은 국가 정책에서 후순위가 되는 관계로 제도의 정비는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한미 FTA는 후순위의 우편정책을 본격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FTA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미국은 이미 지난해 말 새로운 법(Postal Accountability and Enhancement Act)을 제정함으로써 우편사업 독점을 위시한 종래의 우편제도 개편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한미 FTA를 통해 실현된 국제특급배달 시장의 추가 개방을 시작으로 우편사업의 독점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것을 포함한 우편제도 전반의 개편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우편제도의 발전뿐만 아니라 고도화, 다양화되는 고객의 수요에 맞는 서비스 제공을 하리라는 기대를 낳기에 충분한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기대가 기대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최중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 choij@kis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