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생태계의 포식자 `포털`](1부)`법`은 멀고 `포털`은 가깝다?

 노래방(가라오케) 엔진 개발 N사는 지난 2005년 말부터 갑자기 월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사태는 쉽게 파악됐다. 대형 포털 A사가 운영하는 카페에 자사의 엔진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카페는 이를 이용, 불과 30여일 만에 4만명이 넘는 회원을 모집했다. N사는 포털 측에 항의했지만 담당 여직원의 실수라며 저작권이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하겠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할 뿐이었다.

 여섯 번의 시정 요구에도 개선점이 없자 이 회사는 포털을 검찰에 고소했다. 첫 판결에서 N사는 패소했다. 포털의 고의성이 없는데다 카페에 노출된 엔진이 N사에서 만든 것이라는 증거가 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N사는 즉각 항고했지만 늘어나는 변호사비와 포털과 맞선다는 부담 때문에 결국 고소를 취하했다. 이 회사 사장은 “수억원을 손해 봤지만 더 괘씸한 건 포털의 무성의한 태도였다”며 “유명 변호사를 동원하는 등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포털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 같은 사례는 포털과 콘텐츠제공(CP)업체 간 거래에서 흔한 일이다. 최근 들어 포털은 ‘인터넷 최상위 포식자’로 불리며, 과거 오프라인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강요했던 온갖 부정적 내용을 뛰어난 ‘학습효과’로 흡수한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특히 몇몇 대형 포털 위주로 형성된 인터넷 시장은 전문 인터넷 사이트, 즉 다양한 양질의 CP업체가 존재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산업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인터넷 생태계가 ‘CP업체 부실→콘텐츠 질 저하→소비자 피해’라는 빈곤의 트라이앵글로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는 우려감이다.

 ◇영업 횡포, 대기업 뺨친다=‘거침없이 하이킬(High Kill).’ CP업체들이 포털을 향해 내뱉는 야유다. 대형 포털은 CP업체에 광고성 이벤트를 강요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페 등에 올라 있는 무단 복제 콘텐츠 유통도 방조하고 있다. △상도의를 벗어난 영업 △계약 일방 파기 △수익 배분율 임의 책정 등으로 포털의 횡포도 다양하다고 주장한다.

 C 인터넷 문자 서비스업체는 지난 설날, 또 다른 대형 포털 B사에 ‘새해 문자’ 포털 검색 키워드를 평소보다 3배가량 높은 가격에 구매했다. 다소 비싼 가격이었지만 새해 등 기념일의 경우 문자 서비스 이용자가 5배 이상 늘어나는 점을 감안, 본전은 충분히 건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B 포털을 통해 유입된 고객 수는 평소의 절반 이하였다. 스폰서 링크 위에 포털이 직접 제공하는 문자 서비스가 버젓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 업체 사장은 “비싼 광고료를 받고도 자사 콘텐츠를 우위에 놓고 장사하는 건 상도의에 어긋난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포털 쪽에서 돌아온 말은 역시 “미안하다”는 이야기뿐이었다.

 콘텐츠 수익 배분율 임의 책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영화·음악 등 유료 콘텐츠는 판매 수익을 포털과 CP업체가 일정 비율(MSP)로 나눈다. 매출이 100원이라면 60원은 포털이 가져가고 나머지는 공급업체가 챙기는 식이다. 문제는 이 비율을 포털이 마음대로 정한다는 것. 최근 포털과 계약한 B 음원 공급업체의 경우 클릭 수가 낮다는 이유로 10%의 수익 배분율로 계약하는 수모를 겪었다.

 ◇포털산업, 경제적 규제 시작되나=정부 당국도 최근 들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눈치다. 각계에서 왜곡된 포털산업, 특히 대형 포털과 CP 간의 부당한 상거래 행위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정부는 법률 제정과 이에 대한 단속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시장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이 미비해 제대로 된 단속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의 경우 현재 전담팀을 구성, ‘포털 불공정거래’와 관련 예비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결과는 두고봐야 한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포털과 CP업체 간 불공정거래 실태 파악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관련 법안 연내 상정 의지를 밝혔다. 정통부도 과거 음란성 등의 사회적 규제에서 한발 나아가 일정 수준의 경제적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정통부는 △표준 거래 약관 등 가이드라인 제정 △부정 클릭에 대한 기준 설정 △포털 대·중소 상생 방안 마련 등 인터넷 산업 건전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정통부 측은 “인터넷 포털이 미치는 영향이 큰만큼 사후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벙어리 냉가슴, CP=CP는 포털의 횡포에 불만이 있지만 행여 포털의 심기를 건드릴까 입도 뻥끗 못하고 있다. 심지어 자사가 개발한 기술과 유사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도 이의 제기조차 하지 못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동일어기 때문이다. 매출액 100억원 미만 중소 CP업체가 많게는 70% 이상을 포털 매출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포털에 대한 대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작권을 침해 당해도 제대로 항의하는 업체는 드물다. 특히 콘텐츠 원작자들이 향후 비즈니스를 위해 싸움을 꺼리는 탓이다. 웃긴대학은 올해 초 포털 유머사이트에 자사 글이 무단 도용된 것을 파악했다. 이에 저작자에게 통보, 시정을 요구하라고 조언했지만, 작가들이 소송을 꺼리는 바람에 흐지부지됐다.

 광고성 이벤트 강요도 CP업체들에는 불만이다. CP업체는 불만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수면 아래에 머물 뿐이다. 실제로 포털은 기념일 등 때만 되면 각종 이벤트를 강요한다. 하지만 포털이 돈을 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알아서 하고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다. 특히 하위 업체일수록 포털 담당자들의 이벤트 종용은 일상사다. 한 CP업체 사장은 “포털 담당자들은 노출 빈도를 미끼로 은근히 이벤트를 강요한다”며 “특히 콘텐츠가 인기를 끌 경우 독점 공급을 종용하지만 반발하는 업체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etnews.co.kr 김규태기자·한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