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제공업체(CP)에 대한 포털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그동안 CP가 포털에 대해 좀 심하다고 불평하는 이야기를 이따금 듣기는 했지만 실상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못된 짓은 빨리 배운다고 요즘 포털이 CP에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인터넷 최상위 포식자’로서 온갖 특권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CP들이 포털을 요즘 유행하는 TV 드라마에 빗대어 “거침없이 하이 킬(High Kill)”이라고 자조했을까.
CP를 성장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하도급업체 정도로 여기는 모습을 보면 마치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보는 듯하다. CP업체에 광고성 이벤트를 강요하거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 상도의를 무시한 포털 행태는 하루속히 근절돼야 한다. 특히 영화·음악 등 유료콘텐츠의 수익배분 비율을 포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부분 CP가 포털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포털이 원하는 대로 비율이 정해지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심지어 CP가 애써 키워 놓은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과실을 따먹는 포털도 있다고 하니 CP의 옹색한 처지가 충분히 짐작된다.
콘텐츠가 경쟁력인 이 시대에 이런 비정상적인 먹이사슬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질좋은 CP가 나올 수 없다. 더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이 유독 강조되는 때다. 그것도 보통 상생이 아니라 질(質) 좋은 상생이다. 한데 지금의 포털 행태를 보면 상생이라는 말이 도저히 끼어들 자리가 없다. 오로지 CP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 포털만의 성장만 있을 뿐이다. 포털이 이렇게 해 놓고 분기 순익을 몇백억원 올렸다고 말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물론 포털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포털도 주주·종업원이 있는 기업이다 보니 가능한 한 많은 수익과 매출을 올려야 한다. 또 CP가 워낙 많다 보니 모든 CP의 말을 다 들어 줄 수도 없을 것이다. 일부 CP의 콘텐츠는 그야말로 기대 수준 이하일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포털의 행태가 과장돼 알려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와 같은 포털의 행태가 지속되는 한 포털과 CP 간 상생구조 정착은 요원하다. CP가 견실하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포털이 나올 수 없다. 이는 포털 사업자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이 문제에 메스를 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전담팀을 구성해 지난 2월 실태조사에 나섰으며 정보통신부도 표준 거래 약관 등 가이드라인 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도 포털과 CP 간 불공정거래 실태 파악을 위해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공정위의 실태조사를 받고 있는 포털 사업자들은 지금 여러 시나리오를 짜며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공정위 조사가 있기 전에 왜 미리 CP와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 시행하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CP와 동반 성장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 포털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