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소싱, 인도를 넘는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인도에 이은 동북아의 새로운 IT허브로 지적한 곳. 바로 베이징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다롄(大連)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청일전쟁 당시 군항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아시아의 IT 전진기지로, 허브로 탈바꿈한 새로운 모습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달 29일 기자는 다롄을 찾았다. 시내 중심부에서 뤼순 방향으로 30분 정도 차로 달려 이른 곳이 소프트웨어파크. 길 옆으로 보이는 중국 전통의 낡은 짙은 회색 벽돌 건물을 뒤로 하고 소프트웨어파크에 들어가면 마치 미국 중부의 조용한 도시와 같은 분위기를 보인다. 깔끔한 베이지색 건물과 선분홍색 신식 건물들이 사이좋게 서 있다. 다롄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라는 베이징과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였다. 공항에서부터 분위기는 차분하지만 젊음의 열기가 느껴졌다. 소프트웨어파크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서구식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은 다롄의 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자가 찾은 곳은 HP의 글로벌딜리버리오퍼레이션센터. HP가 지난 2005년 동북아 허브로 건립한 이곳은 한국과 중국·일본·영어 등 4개국 언어를 지원하는 HP의 아시아 아웃소싱센터 심장부다.
사실 한국HP의 고객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지만 사실 그들 역시 이곳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 HP가 센터 설립과 함께 한국HP의 콜센터를 이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마치 미국의 유명 호텔들이 인도의 아웃소싱업체로부터 고객관리 용역서비스를 받듯 한국 고객들도 각종 콜센터 서비스를 한국 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HP 고객들도 종전처럼 한국HP에 전화를 하지만 전화를 받아 서비스하는 곳은 용산이 아니라 다롄의 소프트웨어파크 센터다.
다롄 HP의 한국 콜센터 입구에는 ‘전 세계 콜센터의 롤 모델이 되자’는 구호가 선명하게 씌여 있다. 이곳에는 80여명의 한국인(조선족 포함)이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한다. 중국과 한국 시차 때문에 1시간 일찍 출근할 뿐 한국과 근무 환경이 거의 흡사하다.
2주 전 한국에서 이곳으로 취업한 최석씨(25)는 세계적인 컴퓨팅업체인 HP에서 근무하며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이 도전해볼 만한 직장”이라고 말했다. 그가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중국·일본은 물론이고 홍콩·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적의 젊은 엔지니어들이기 때문이다.
HP의 다롄 콜센터에는 현재 900여명의 임직원이 근무한다.
다롄의 소프트웨어파크에는 HP 외에도 IBM·오라클·엑센추어 등 세계적인 컴퓨팅 및 컨설팅 업체들이 아웃소싱 비즈니스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다롄은 지난 2004년 중국 정부가 낙후된 동북 공업지역의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프로젝트 ‘동북공업지역진흥전략’을 추진, SW 국제화 도시로 집중 육성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도에 버금가는 SW 아웃소싱 서비스 산업 지역으로 이 도시를 육성하기 위해 첨단산업기술단지 건설을 포함해 총 2800만 위안(42조원)을 투자했다.
중국 정부는 연말까지 부지면적 50만㎡에 건립 중인 다롄소프트웨어파크 건립을 완료하고 오는 2010년까지 종업원 1만명을 고용하는 대형 기업단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HP 아웃소싱센터를 뒤로 하고 찾은 곳은 세계적인 컨설팅업체인 액센츄어의 중국 딜리버리센터.
액센츄어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중화권 지역의 12개 국가 4개 언어를 사용하는 기업의 비즈니스프로세스아웃소싱(BPO)을 이곳에서 담당한다. BPO는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 일부 또는 업무 전반에 걸쳐 위탁 수행하는 서비스로 구매나 인사·연구개발(R&D) 업무를 전문 IT서비스 업체가 수행해 주는 것을 일컫는다.
엑센츄어는 현재 중국 다롄 딜리버리센터를 이용해 국내 금융기관의 애플리케이션 아웃소싱을 사업을 추진중이다. 센터는 한국말을 지원하는 직원을 뽑고 국내 교육까지 마친 상황이다. 이미 일본 미쓰비시·스미토모케미컬 외에 일본에 진출한 유럽의 보험사 및 일본 채권거래시스템 등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치 웨이 액센츄어 딜리버리센터장은 “액센츄어는 다롄 외에도 전 세계 30개국에 40개 네트워크센터를 운영 중”이라며 “다롄 센터는 애플리케이션 아웃소싱에서 시작해 인사·재정 등으로 업무 프로세스 아웃소싱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센터의 3층 건물로 기자를 안내하며 모 일본기업의 업무 아웃소싱 현황을 설명했다. 그는 “3년 전 아웃소싱을 계약을 했는데 그곳에서 먼저 아웃소싱 분야을 확대하자고 해 인력을 늘리고 있다”며 “다롄 센터는 철저한 보안과 완벽한 일처리로 고객의 만족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사실 다롄 센터는 비영어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아웃소싱의 전초기지다.
인도에서 커버하기 힘든 비영어권 국가의 기업을 대상으로 BPO(Business Outsourcing)를 추진하는 중추로 소리없이 급부상하고 있는 곳인 셈이다. 최근 인도의 아웃소싱 비용이 연간 20%씩 오르자 영어권에서조차 인도를 대체할 아웃소싱 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다롄이 각광받고 있다. 호재에 호재가 겹치고 있는 셈이다.
아웃소싱, 즉 한국에서 흔히 시스템관리(SM), 또는 시스템통합(SI)로 불리는 BPO 아웃소싱에 관한 한 이곳은 새로운 동아시아의 허브로 뜨고 있었다. 한국도 이제 더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이 분야에서 설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증거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다롄의 아웃소싱센터를 활용한 기업의 경영전략은 오히려 관성적인 비즈니스에 빠져있는 한국 SI업체들에 교훈을 제공하고 있었다.
중국 동부 3성의 SW아웃소싱 중심지 다롄에서는 지금 조용한 혁명이 이뤄지고 있다.
이재구팀장@전자신문,jklee@etnews.co.kr, 김익종기자, 성호철기자
◆인터뷰-홍주식 HP 한국담당 콜센터장
“글로벌 인재를 꿈꾸는 젊은이는 다롄으로 오세요.”
홍주식 다롄 HP 글로벌딜리버리오퍼레이션센터의 한국담당 콜센터장은 “다롄은 중국 정부의 SW산업 유치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깨끗하고 청명한 기후로 중국 대학생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도시”라며 “글로벌 인재를 꿈꾸는 국내 젊은이들이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HP 글로벌딜리버리센터에 대해 “특히 IT시스템을 기반으로 동북아시아의 SW 개발과 BPO 관련 업무에 관한 한 세계적인 수준의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현재 900여명의 젊은 아시아 인재들이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롄 HP 글로벌딜리버리오퍼레이션센터에 취직하면, 2주간 현지 적응 프로그램과 함께 중국 정부로부터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센터가 곧 글로벌 인재양성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세계 아웃소싱의 성지인 인도까지 거론할 필요가 없다. 다롄은 이런 방식으로 글로벌 IT기업의 새로운 성지로 동북아에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고용 수준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다롄 센터에 취직하면 중국 상하이 HP의 정식 직원으로 활동하게 되며 HP 직원들과 복리후생도 똑같이 지원받는다.
한국 콜센터의 경우 한국의 업무를 상하이 HP가 다롄 지사에 아웃소싱하는 형태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산학협동의 일환으로 HP와 중국 대학간 교육 및 취업을 근간으로 하는 프로그램인 ‘골든브리지’ 등 다양한 업무 프로그램을 마련해 우수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HP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IT업체들이 다롄에 아웃소싱 센터를 마련하고 우수 인재를 끌어모으면서 중국의 젊은 인재들이 다롄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다롄은 중국의 낙후한 동북지역 도시에서 역동적인 동북아의 글로벌 인재들이 실력을 겨루는 글로벌 경쟁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한국의 젊은 인재들이 자신의 역량과 경쟁력을 가늠해 볼 기회를 찾아 펼칠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