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오늘은 아피스(농업전문 정보 포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요. 농사를 짓는 데 유익한 자료가 아주 많습니다.”
“응 그렇군. 이왕 온 김에 영농일지 작성하는 법도 가르쳐 주게나. 잘 안 되는구먼.”
전남 구례군 구례읍 계산리 이성기씨(59) 집. ‘농업정보 119 서비스’라고 쓰인 재킷을 입은 대학생 두 명이 이씨와 함께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자판을 두드린다. 돋보기를 쓴 채 컴퓨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이씨는 학생들에게 중간중간에 궁금한 것이 있으며 지체하지 않고 묻는다.
“난 요즘 친환경농법에 관심이 아주 많은데. 어디에 가면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지?”
두 학생은 직접 사이트 검색하는 방법을 시연하며 재빨리 대답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친환경농법을 검색해보면 이렇게 자료와 뉴스, 관련된 사이트가 많이 나옵니다. 필요하신 자료를 쉽게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올해로 4년째며 지금까지 줄잡아 30여 차례 이뤄졌다. 그러는 사이 이씨는 요즘 인터넷을 이용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농업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각종 농산물과 병해충 정보를 얻고, 친환경 농사법을 배우느라 밤을 꼬박 샌 적이 부지기수다. 고단한 하루 일과로 자칫 놓치기 쉬운 TV뉴스나 신문기사도 인터넷을 통해 읽고,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자녀와도 e메일을 주고 받을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이씨는 “컴퓨터를 알고난 뒤로 그동안 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서 “‘만능박사’인 인터넷을 알게 된 것이 인생에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전형적인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만 지어온 이씨가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불구, 이처럼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농협을 통해 알게 된 대학생, 즉 순천대 농업정보 119 서비스 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99년 농림부의 지원으로 발족한 서비스 팀의 주된 활동 목적은 정보화시대에 맞춰 농민과 도시 간 정보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컴퓨터 지식과 관련 사이트의 안내, 직거래 사례 등을 소개함으로써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순천을 비롯해 곡성·구례·광양·여수·고흥 등 전남 동부권 지역 농가를 8000여회 이상 방문해 컴퓨터 환경설정을 비롯해 키보드 조작, 윈도 문서작성, 인터넷 정보검색 등 컴퓨터활용요령과 농가경영장부 등 농업 활용요령 등을 교육하고 있다.
또 집합교육을 통해 1000여 명의 농민에게 컴퓨터 기초, 인터넷 활용, 홈페이지 작성법, 문서작성법 교육과 양돈경영 정보화, 자가가축 사료배합, 복합 농업경영 정보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전문교육도 실시했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분들이 처음에는 무척 어려워하지만 조금씩 익히다 보면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변합니다. 초창기에는 주로 컴퓨터 실습장이나 읍·면·동사무소에서 교육을 실시했지만, 이제는 농촌에도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져 주말을 이용해 집을 방문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농촌도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1년 때부터 처음 서비스 팀에 가입해 군 복무를 거쳐 복학한 뒤에도 계속 활동하고 있는 오동일 팀장(25·컴퓨터교육과 3년)은 “친 부모님께 인터넷을 가르쳐 드리는 심정으로 어르신들을 대하다 보니 서비스팀 활동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면서 “취업공부하는 도중에라도 서비스 팀의 도움이 필요한 농민들이 계신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순천대 팀은 농림부가 주관하는 전국대학 농업인 정보화교육 시행기관 평가에서 지난 2002·2003·2004년 3년 연속에 이어 2006년 우수대학으로 선정돼 장관상을 수상할 만큼 농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비결은 강사인 학생들을 평일과 휴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농가에 보내 농민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또 농민의 컴퓨터활용 능력과 수준에 따라 기초교육·중급교육·전문교육 등으로 나눠 교육하는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가장 큰 보람은 인터넷 교육을 받은 농민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직접 재배한 과일을 도시 사람들과 직거래를 해 수익이 늘었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기존에는 오로지 공판장에 헐값으로 내다파는 게 전부라고 생각해 온 그 분이 인터넷을 통해 다른 세상을 알았다며 고마워 할 때 서비스 팀원으로서 자부심을 갖습니다.”
서비스 요원 차건씨(26·생물환경전공 3년)는 “20여 명의 회원들이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회의를 열어 도움을 요청해온 농민을 찾아가 교육할 팀을 짜고 새로운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면서 “회원 대부분이 도시와 농촌 간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정보화 도우미라는 열정이 대단하면서 동시에 농촌을 사랑하는 마음도 각별하다”고 소개했다.
광주=김한식기자@전자신문, hskim@
(사진설명 : 순천대 농업정보 119 서비스팀은 인터넷 이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들의 정보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서비스 요원이 농가를 방문해 정보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농업정보 119 서비스 사업이란
농업정보119 서비스는 농림부가 실시하고 있는 농업인 정보화 교육사업이다. 지난 99년 전국 22개 농업계 대학에서 발족됐으며 전국 165개 시·군 지역을 대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서비스팀은 책임교수 한 명과 팀장 한 사람, 서비스요원 6명 이상으로 구성돼 있다. 책임교수가 농업관련 대학(원)생 중에서 컴퓨터 활용 기본능력을 갖추었거나, 컴퓨터전공 학생을 서비스 요원으로 선발해 운영하고 있다.
교육 내용은 컴퓨터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이용에 관한 문제 해결, 인터넷 이용 요령, 정보탐색방법, 전자메일 이용방법, 홈페이지 이용방법 교육, 농업관련 프로그램 설치 및 사이트 이용 방법 등이다. 최근에는 농산물 전자상거래 구축과 데이터 입력방법 등도 주요 교육내용에 속한다. 팀과 농민의 만남은 농가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 가까운 대학에 신청하면 농과 대학생이 방문해 도와 주는 형태로 이뤄진다. 컴퓨터 서비스센터와 먼 거리에 위치한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농촌의 정보화 격차 해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주=김한식기자@전자신문, hskim@
◆인터뷰-임요섭 책임 교수
“전남지역 농민들의 정보 활용능력을 높여 소득증대에 기여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대학과 지역민이 서로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임요섭 순천대 농업정보 119 서비스팀 책임교수(48·생물환경학과)는 “농업정보 119 사업은 지역 농민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화교육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전문 농업 경영인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각종 농업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정보활용 능력을 높여 체계적인 기록 관리와 과학적인 분석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임 교수는 집합교육과 함께 학생을 직접 농가에 파견해 농민과 일대일 교육을 하도록 함으로써 교육의 효율과 질을 높이고 컴퓨터 관련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히 인터넷 교육과 컴퓨터 수리 등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농민이 주류를 이뤘으나 점차 농업용 소프트웨어 활용 방법과 전자상거래 구축 등을 문의하는 농민이 늘고 있다”면서 “교육을 거듭할수록 농촌도 정보화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교수는 예산이 충분하지 못해 농업정보 119 서비스 사업을 질적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주말과 휴일도 마다하지 않고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계층에 비해 농민들은 지속적인 교육 및 관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체계적인 사후 관리와 교육 강화를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현장으로 파견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도 부족해 미안한 점도 많습니다.”
임 교수는 “초창기보다는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까지 농민 정보화 교육은 일회성이거나 즉흥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부문이 많은 것 같다”면서 “농업정보화 교육은 수익창출을 위한 전문교육과 농업인 능력계발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춰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주=김한식기자@전자신문, h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