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찾아서]얼리어답터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써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얼리어답터. 신제품을 내놓는 회사의 입장에서 이들은 그 누구보다 조심스러운 존재다. 보통 사람들은 새로운 기기를 구입해서 사용 후 소감을 쓴다고 해야 A4 용지로 한 장을 넘기기도 힘들테지만, 얼리어답터들은 열 장, 스무 장이 넘는 리뷰를 써내려 가며 자신이 느낀 소중한 경험을 나누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신기한 것들을 잔뜩 갖고 살아가는 얼리어답터들, 이들의 생리가 너무 궁금하다. 얼리어답터가 한 두 사람도 아닌 14명이, 그것도 얼리어답터를 ‘업’으로 삼기 위해 회사까지 차렸다고 해서 그들을 찾아갔다. 얼리어답터들이 모인 곳, 그래서 회사 이름도 얼리어답터다.

 오후 4시. 회의가 한창이다. 요즘엔 키덜트족(어린이 분위기와 감성을 추구하는 20·30대 성인)을 위한 일종의 장난감이 많이 나왔다. 날아다니는 잠자리, 만화에서 나오는 폭파 단추 등등.

 ‘날아다니는 잠자리’는 하늘을 나는 곤충 중 가장 절묘한 비행기술을 갖고 있는 잠자리를 재현한 장난감이다. 가볍고 날씬한 몸매로 하늘을 이리저리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순간 멈췄다가 다시 수십㎞ 속도로 날아갈 수도 있다. 리모컨으로 잠자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 맘껏 즐긴 후, 이제는 이런 제품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180만 명의 다른 얼리어답터들 회원에게 소개할 차례다.

 제품 리뷰는 글을 잘쓰는 주재현씨가, 사진은 윤효중씨가 맡는다. 사진과 글이 완성된 후 이를 효과적으로 소개하도록 디자인을 하는 일은 백낙민씨와 허은석씨의 몫이다. 이렇게 리뷰를 올리면 회원으로 등록된 180만명의 얼리어답터들이 또 새로운 리뷰를 댓글로 올리고 또 올린다. 때로는 체험단 행사도 하는데, 어떤 얼리어답터 회원은 한 달 동안 제품을 사용해보고 리뷰로 잡지 한 권 분량의 리뷰 글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얼리어답터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재미있는 제품들은 김수경씨가 해외 웹사이트를 뒤지고 또 뒤져 찾아낸다. 때때로 일본 등 해외로 원정을 나가기도 한다. 지난해 12월에는 김수경씨가 닌텐도의 위(Wii)를 사기 위해 일본 도쿄 한 상점 앞에서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꼬박 밤을 세워 기다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가져온 이불과 박스로 12월 한파를 겨우겨우 견뎌내며 기다렸지만, 결국 그곳에서 위를 사지 못했어요. 그래도 정성에 하늘이 도왔는지 지나가는 길에 한 상점의 갑작스러운 이벤트로 위를 구입할 수 있었고, 이렇게 사서 들여온 위는 얼리어답터 14명의 보물 1호가 됐답니다.”

 물론 4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이 놀라운 위도 이들 얼리어답터에게는 더는 이슈가 되지 못한다. 이제 5월에 쏟아질 내비게이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내비게이션이 나오면 이들은 즉각 차량에 장착하고 일부러 길을 헤매기를 며칠 동안을 계속한다. 일부러 길을 헤매다니 참 독특한 사람들이다.

 남들보다 앞서서 제품들을 써보는 것으로도 부족해 제품 안에 들어 있는 반도체 리뷰까지도 해 봤다. 삼성에서 반도체를 개발했던 윤희앙 사장의 업력 덕택이다.

 “새로운 반도체를 장착한 제품을 통해 반도체 성능 리뷰를 해보기도 했다. 반도체 리뷰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사람들이 어떤 성능을 원하는지 미리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시도해 봤다”라는 것이 윤 사장의 설명이다.

 새로운 제품에 대한 관심, 꼼꼼하고 세심한 감각 등이 어우러진 이들 얼리어답터들에게는 또 다른 일이 있다.

 이런 감각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가만둘 리 없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의 경우 이들의 감각을 활용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마케팅이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토로라, 아이로봇 등이 얼리어답터의 고객이었다.

 윤 사장은 “로봇 청소기, 휴대폰 등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 얼리어답터의 눈으로 마케팅 기획까지 하고 있다”라며 “남들에게는 취미정도지만 우리들에게는 직업이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접할 기회가 생기고, 그렇다 보니 생각도 마음도 늘 새로워져 즐겁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