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미디어포럼]번들링을 넘어 블렌딩으로

해외 출장을 갈 때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먹게 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비빔밥이다. 각종 나물과 채소에 고추장을 넣고 비빈 후, 참기름까지 넣으면 그야말로 간편하면서도 맛있는 영양 만점의 한끼 식사가 된다. 그런데 이 비빔밥을 먹는 방식에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번은 옆 좌석에 앉은 외국인이 비빔밥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맨 위에 놓인 나물들과 야채들을 하나씩 먼저 먹고 그 다음에 밥과 고추장을 섞어 먹는 것이다. 옆에서 내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충분히 참고할 수 있도록 시범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먹는 그 모습을 보며 ‘저렇게 먹으면 제대로 된 비빔밥의 맛을 볼 수 없을 텐데’ 하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문득 우리가 즐기는 통신 서비스와 네트워크를 떠올렸다.

 그동안 국내외 통신시장에서 전화·초고속 인터넷·TV 등의 유무선 및 방송 서비스를 묶어 저렴하게 제공하는 ‘번들링(bundling)’ 형태의 결합 상품이 등장했다. 통신사업자들은 기존 고객의 이탈을 방지하고 새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툴로 번들링을 이용한다. 통합 청구로 가입자들에게는 편리성을 제공하며 과금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얻었다. 향후 와이브로까지 활성화된다면 시장 환경에 따라 인터넷 전화(VoIP)까지 묶는 번들링 서비스도 나올 전망이다.

 지금 우리가 직접 매장에 가지 않고 쇼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보면 몇 가지가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으로 특정 웹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 살 수도 있고, TV 홈쇼핑을 보며 주문할 수도 있으며, 핸드폰으로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한 물품 구입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게 웹·TV·m커머스 등의 방법 중 두 가지 이상을 연결해 단순히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 외에는 사용자 입장에서 번들링이 갖는 특별한 이점은 없을 것이다.

 반면에 ‘블렌딩(blending)’은 컨버전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글로벌 통신 서비스 시장의 궁극적인 목표라 하겠다. 개인화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바로 블렌딩이다. 서비스 블렌딩이 가능해지면, 홈쇼핑 TV를 보다가 마음이 드는 제품이 나오면 같은 TV 화면에서 인터넷을 통해 관련 정보 및 상품평을 바로 검색해 볼 수 있다. 동시 접속 중에 친구에게도 한번 봐달라고 할 수도 있을 뿐더러 핸드폰이든 웹이든 홈쇼핑이든 마음대로 선택해 제품을 구입한다. 아울러 쇼핑 중에 전화 벨이 울리면 동일한 화면을 통해 영상 통화가 가능하고, 통화 중에 이동하게 된다 하더라도 핸드폰 등 다른 단말기로 계속 통화할 수 있다. 그야말로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어떤 디바이스를 통해서든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 블렌딩은 아직 제한된 형태기는 하지만 이미 시장에서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핸드폰을 통한 위치 기반 서비스나 시큐리티, 홈 네트워킹 서비스가 바로 그러한 예라 하겠다.

 블렌딩 서비스가 가능해지면 전자상거래·교육·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관련 분야의 비즈니스 모델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과의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규 수익 창출을 할 수 있으므로 컨버전스 시대에는 IT 산업 성장과 시장 활성화를 이끌어내는 통신사업자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디지로그’라는 저서에서 오방색 조화를 밑그림으로 하는 대표적인 한국 음식으로 비빔밥을 소개했다. 형형색색의 나물을 잘 비벼 비빔밥이라는 전혀 새로운 맛의 음식을 만들어내듯이 잘 갖춰진 통신 인프라, 앞선 서비스 그리고 첨단 단말기 분야 기술이라는 훌륭한 재료를 잘 활용해 서비스 블렌딩에서도 한국이 한 발 앞서 걸음을 내디뎠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적 보편성과 균형감까지 두루 갖춘 음식으로 꼽히는 한국 비빔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우리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이제는 IT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양춘경 한국알카텔-루슨트 사장 jcyang@alcatel-luce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