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홈 혁명 거실을 잡아라]2부 이렇게 이뤄진다⑧비디오게임기

 집안의 모든 디지털기기를 제어하는 디지털홈에서 ‘두뇌’1순위 후보자는 당연히 ‘PC(개인용컴퓨터)’로 보였다. 그동안 집 안에 존재했던 어떤 전자제품보다 똑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출발한 비디오게임기는 어느덧 PC 못지않은 지능을 갖추며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비디오게임기는 디지털홈 허브 자리를 놓고 PC와 경쟁을 펼치며 ‘1인용 정보기기’라는 PC의 태생적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PC는 안방이나 공부방의 책상 위에서 거실로 나오기 위해 ‘미디어센터PC’를 내세우지만 여전히 고전 중이다.

  비디오게임기는 애초부터 TV의 옆자리를 차지해온 터줏대감이다. 특히 게임 문화가 30대 이상으로 확장되면서 1인용이란 굴레도 벗어버린 지 오래다. 기술의 발전을 따라, 디지털홈 허브의 최대 조건인 연산처리 능력과 네트워킹 능력도 갖췄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PC가 홈네트워크 서버로 적합한 기기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하지만 PC가 게임기의 도움 없이 무혈입성할 지는 미지수다. 게임기가 PC의 기능을 흡수하는 기술 흐름상 홈네트워크 서버 자리는 ‘PC와 게임기 간 조화’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보급대수의 힘=소니의 게임기 첫 모델인 플레이스테이션(PS)은 1억300만대가 팔린 것을 비롯, PS2 1억2000만대, PS3 500만대, PSP 3000만대로 ‘PS’란 이름으로 팔린 단말기 수만 2억5600만대에 이른다. 디지털홈 전략에서 눈여겨봐야 할 게임기는 PS3다. 이 제품은 아직 국내엔 출시되지 않은 상태로, 북미지역에선 출시 첫날 소비자들이 구입을 위해 판매점 앞 긴 행렬을 만들며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PS3도 PS2의 명성을 이어, 1억대 이상 보급의 힘을 보여줄 태세다.

 MS의 X박스는 2001년 11월 시장에 첫발을 내딛었지만 첫 성적표는 미국·유럽 시장은 겨우 MS 명성에 누를 안끼치는 정도였으며, 일본에선 고작 22만대 판매에 그치며 참패했다. 차세대 게임기인 X박스 360은 그러나 2005년 11월 북미지역에서 정식 발매 후 올해 1월 전세계에서 1040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MS는 올해 6월까지 1500만대 이상의 판매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차세대 게임기(닌텐도 포함)가 향후 2년간 1억5000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전망한다. 1억5000만 거실에 게임기가 진입하는 셈이다.

 ◇PC를 넘어서는 기능=MS의 X박스360은 차세대 DVD 규격인 HD DVD 드라이브를 외장 장치로 갖고 있어, 장기적으로 X박스360이 집 안의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PC의 운용체계를 장악해온 이 거인은 디지털홈의 두뇌 역할은 PC가 차지하고 X박스360이 이를 측면지원하길 바란다.

 소니의 PS3는 기본 성능면에서 이미 PC를 넘어섰다. 한 장의 저장 용량이 무려 54GB(기가바이트)인 블루레이 디스크를 표준으로 삼으며 IBM과 공동개발한 3.2GHz 셀(Cell) 프로세서와 엔비디아(Nvidia) 기반의 RSX 그래픽 프로세서를 채택한다. 휴대형 게임기인 PSP와는 와이파이(WiFi)기술로 서로 연동된다. 이는 PSP에서 PS3에 저장된 음악이나 동영상에 원격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 홈네트워크에 대한 게임기다운 접근방식이다. 물론 X박스360과 PS3 모두 초고속 무선 네트워크를 통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다.

 ◇소니와 MS의 전략=가전 제조업체인 소니는 게임기인 PS3에 내장된 셀 칩을 다른 디지털가전제품에도 적용, 이들 제품을 홈네트워크의 기반으로 삼을 계획이다. MS도 X박스360을 미디어센터PC와 함께 홈네트워크 서버의 양대 축으로 삼을 방침이다. 차세대 게임기는 그러나 현재로선 디지털홈 제어보다는 디지털홈 엔터테인먼트 허브 자리에 관심이 더 많다.

 둘 간 첫번째 격전지는 300억 달러 규모의 게임 시장이다. 향후 2008년엔 4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게임 시장은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두 회사의 관심은 그러나 5년 앞을 내다본 ‘디지털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있다.

 X박스 360은 우선 전세계 600만명 이상의 회원 수를 갖은 X박스 라이브가 강점이다. 게이머들은 음성과 화상 채팅을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X박스 360이 X박스 라이브를 통해 각종 TV 프로그램의 고화질 버전과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CBS, MTV, TBS, 파라마운트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홈 엔터테인먼트 등 10여개 미디어 업체들이 X박스 라이브에 영화와 드라마를 제공키로 하면서 본격적인 홈네트워크 서비스가 시작됐다. 또한 MS는 X박스 360을 IPTV 셋톱박스로 활용하는 등 거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엔터테인먼트 기기 간 네트워크’를 장악할 태세다.

 PS3의 ‘홈(Home)’서비스는 소니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목표점을 엿볼 수 있는 단초다. 올 가을께 첫선을 보일 ‘홈’은 PS3와 네트워크에 기반한 실시간 온라인 3D 네트워크 커뮤니티다. PS3 이용자들은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온라인 게임에 참여하며 쇼핑도 한다. 개인적인 콘텐츠를 공유하고 그들의 개인공간을 만든다.

 소니는 가정의 디지털기기를 한 곳에 모으는 것보다 PS3를 통한 네트워킹 커뮤니티의 구축을 서두르는 것. ‘엔터테인먼트’에 관해서라면 MS보다 한 수 위임을 자부하는 소니이기에 디지털홈 엔터테인먼트 장악의 첫 수도 소비자를 매혹시킬 새로운 즐거움인 셈이다.

◆’X박스360 vs PS3’는 차세대 DVD 대리전

 마이크로소프트(MS)의 X박스360과 소니의 PS3는 디지털홈 허브 장악전에선 다소 물러서 있지만 반대로 ‘차세대 DVD 표준 규격 경쟁의 대리전’을 치르는 성격도 띤다. 차세대 DVD 표준 경쟁은 디지털홈의 콘텐츠 저장 허브 장악으로 이어지는 구도이기 때문에 MS와 소니의 게임기 전쟁은 차세대 DVD 시장에서도 눈을 떼기 힘든 주요 전쟁터다.

 차세대 DVD 표준 경쟁은 소니가 이끄는 블루레이와 도시바 진영의 HD DVD로 나뉜다. 블루레이 진영에는 소니를 비롯해 마쓰시타, 필립스 등 제조사와 월트디즈니, 소니픽처스 등 영화사가 포진해 있다. HD DVD진영엔 도시바, NEC, 유니버설스튜디오 등과 함께 MS가 있다. 현재 두 진영 모두 대중적인 보급기에 들어선 ‘블루레이 플레이어’나 ‘HD DVD 플레이어’가 없다.

 최선두에 바로 소니의 PS3와 MS의 X박스360가 있다.

 HD DVD 진영의 지지자인 MS는 X박스 360의 주변 기기로 ‘X박스 360 HD DVD 플레이어’를 이미 국내 출시한 상황이다. MS의 ‘HD DVD 플레이어’는 X박스360과 USB로 연결해 일반 DVD보다 6배나 높은 고화질을 제공한다.

 반면 소니의 PS3는 블루레이 재생 기능이 아예 내장돼 있다. PS3의 보급 속도는 바로 블루레이 단말기의 속도와 일치하는 셈이다. 특히 소니가 PS3를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출혈 보급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차세대 DVD 단말기와는 보급 속도가 경쟁이 안 될 정도다.

◆PS3에 숨겨진 `홈네트워크 반도체 전쟁`

 ‘1가구 1PC’를 장악해온 윈텔의 시대를 지나, 집 안의 모든 디지털기기가 연결되는 ‘디지털홈’시대에 IBM의 반도체 재도전 노림수는 의외로 게임기 안에 있다.

 소니의 PS3에는 고성능 프로세서 ‘셀(Cell)’이 탑재돼 있다. ‘셀’은 IBM, 소니, 도시바가 2001년부터 공동 개발해 온 3.2GHz 프로세서다. 초기 셀 프로세서는 90nm 공정으로 생산됐으며 IBM은 초기 모델에 약 2억3400만개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돼 있다고 밝혔다. 이미 IBM은 1세대인 90nm 셀 칩보다 집적도를 높이고 크기를 줄인 2세대 ‘65나노 셀’ 칩을 개발해 대량생산에 들어가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 1위인 인텔은 IBM의 셀을 향후 홈네트워크 반도체 부분 산업 표준 장악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으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PS3 1만대를 온라인상에 병렬분산연산작업을 시키면 PC 20만대와 맞먹는 연산능력을 갖춘다. 셀은 이미 게임기를 넘어 서버에도 사용되고 있다. IBM은 셀을 내장한 서버 판매를 강화 중이며 소니는 2008년 초부터는 주요 가전에도 내장시킬 예정이다. PS의 아버지로 불리는 소니의 구다라키 겐씨는 “셀이 게임과 디지털가전의 심장부”라고 공언해 왔다.

 IBM은 도시바·소니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9개 코어를 가진 셀 칩을 개발해 게임기부터 디지털TV에 이르는 모든 정보가전기기에 탑재시킨다는 구상이다. 셀 칩을 탑재한 정보가전제품들은 서로 광대역통신으로 연결돼, 하나의 시스템으로 상호 작용하는 ‘홈네트워크’의 비전이다. 홈네트워크의 최강 칩이 바로 ‘셀’이란 자신감과 함께 ‘홈네트워크 반도체 시장 장악’을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

 PC진영을 기반으로 반도체 맹주 자리를 지켜온 인텔은 홈네트워크 기기에 적합한 칩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바이브 기술이 현재 유력한 디지털홈 및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허브인 PC영역을 완전 장악한 후 정보가전 영역으로 진입한다는 전략이다.

 홈네트워크 반도체 전쟁은 게임기에서 제1막을 시작한 셈이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