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자살, 베르테르 효과

[아침을열며]자살, 베르테르 효과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자살은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행위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자살은 하늘의 부름을 거역하고 신을 모독하는 행위로서, 이를 범죄시해 19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은 자살기도자의 재산을 몰수하고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 인간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이므로 목숨의 처분권도 하느님에게 있는데 재산권을 침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햄릿의 애인 오필리어는 자살을 했기 때문에 인부들이 무덤 만드는 일을 거부하는가 하면, 단테의 ‘신곡’에서는 로마의 공화정을 위해 투쟁하다 시저의 공격에 밀려 삶을 마감한 마루투스 카토가 자살 이유 때문에 연옥 문지기로 내려앉는다. 그 대신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날은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가기 때문에 축일로 기린다. 성모마리아가 별세한 8월 15일을 성모 승천일이라고 해서 십자군 전쟁 때 출정일로 택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살의 원인은 일반적으로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상실했거나 지나친 삶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서 일어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계상으로 자살률이 높은 지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돼 있다는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 등 북유럽 쪽이지만 가장 자살자가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윤회 사상이 짙은 불교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에서는 삶과 죽음을 같은 반열에서 바라보는가 하면, 죽음이야말로 삶을 결산하는 클라이맥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 ‘춘향전’처럼 일본인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극은 ‘주신구라(忠臣藏)’이다. 비명에 간 아카호의 번주 아사노 나가노리를 위해 그의 부하 무사 47명이 천신만고 끝에 원수인 기리요시나카의 목을 베어 주군의 무덤에 바친 후 일제히 할복자살하는 대단원에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보낸다. 미 군정 때 이 가부키는 그 잔인성 때문에 공연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들의 무덤이 있는 도쿄의 센가쿠지(泉岳寺)에 가서 47명 무사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분향한 적이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비롯해 일본 역사상 10대 문호 중 네 명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도 특이하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자살자가 연간 1만4000여명으로 늘어 일본을 앞질렀을 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0만명 당 26.1명으로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생활비관, 건강, 학교 성적, 가정불화, 실연 등을 이유로 하루 평균 40명이 목숨을 끊고 있으니,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은 수며 10년 전보다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사회지도층이나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빈번해짐으로써 사회적 충격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그 여진이 모방자살로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현대 아산의 정몽헌 회장을 비롯해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박태영 전남지사, 전교조와 갈등빚던 서승목 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영화배우 이은주, 가수 유니, 탤런트 정다빈의 잇따른 죽음은 인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풍조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우리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8세기 중엽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한 베르테르가 권총자살하는 내용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간된 후 유부녀 사랑과 실연에 따른 자살이 만연해지자 일부 국가에서는 괴테의 이 소설책을 판매금지했다. 이 같은 모방자살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는데, 실제로 2005년 2월 이은주의 자살에 따른 매스컴의 지나친 관심이 한동안 회오리친 탓인지 그해 3월에는 평소보다 2배 가까이 자살자 수가 늘어난 통계가 있다.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당사자가 느끼는 절망감이나 고뇌는 엄청났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자살은 결코 탈출구가 될 수 없다. 죽음의 의미는 당사자보다도 살아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므로, 오히려 더 많은 고통과 짐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떠넘기게 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청소년시절 고학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고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을 향해 부단히 도전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최선의 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나 많은 시련과 굶주림을 잘 견뎌내 오지 않았는가. 무릇 동서고금의 위대한 것은 모두 역경과 고뇌의 산물이었다.

 우리 모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따뜻한 사회적 연대를 많이 구축해 힘들어하는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부축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김동현 한국광고단체연합회 부회장 dhkim@a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