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CEO 자리에 누가 오느냐 또는 얼마나 적재적소에 적절한 인력을 배치해 운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이나 기관의 흥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 사람을 다루는 인사가 어렵다는 얘기다. KAIST가 그런 경우다. 규모의 경제론을 펴며 사립대학화와 대학 외연 확대를 주장하던 로버트 러플린 전 총장은 2년 만에 총장 자리를 내놨다. 반면에 서남표 총장은 학생들이 들고 일어날 만한, 성적에 따른 등록금 징수 시스템을 시도하고 교수의 질 개선을 위한 테뉴어(종신고용) 시스템도 강화했다. 외국 교수에 평가서를 보내 일정한 기준 이하로 평가가 나오면 테뉴어 심사에서 과감하게 탈락시킨다. 나가라는 간접 통보다. 대학의 볼륨을 키우기 위해 연구소를 설치하고 교수 인력을 대대적으로 충원하고 있다. 한국정보통신대학교(ICU)와의 통합을 추진하는가 하면 1000억원의 대출까지 성사시켜 놓았다. 내부에서야 무수한 논의가 이루어졌을지는 몰라도 뒷말은 아직 없다.
최근엔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과학재단이 기관장 재공모를 진행 중이다. 이달 1일부터 공모 방법이 바뀐 사실을 모르고 지난달 공모를 냈다가 부랴부랴 취소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지난 1일부로 시행되고 있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과학재단을 포함한 공공기관 기관장은 임기가 만료될 경우 먼저 실적 등을 평가한 뒤 1년 단위로 우선 연임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는데 이 사실을 몰라 나온 실수다. 이 연임 시스템은 과학기술계 대부분이 원하던 것이다. 매번 기관장 공모 때만 되면 기관장 교체를 예상한 줄서기와 설왕설래로 연구단지 전체가 술렁이는데다 새 기관장의 기관 발전 계획에 따라 조직과 과제는 언제나 춤추듯 흔들려 온 것이 사실이다. 그 행태는 “저 사람은 3년 뒤 떠날 사람인데 내가 왜”로 집약됐고, 그래서 나온 보완 시스템이 현재의 변형된 공모제다.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하거나 남의 지식을 빌릴 줄 아는 이는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남의 지혜를 빌려 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런 슬기로운 CEO가 있다면 약간의 흠집이나 ‘옥에 티’ 정도는 덮어줄 줄 아는 ‘덕’도 필요하지 않을까.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