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버 아닌가요” “말이야 쉽지요”
권영수 LG필립스LCD 사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대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사실이 알려지자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싸늘했다.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마저 쏟아졌다. 정작 LPL 직원들도 “의도야 좋지만…”이라며 말꼬리를 흐리기 일쑤였다. 불신의 골은 그 만큼 깊고 어두웠다. 이런 식이면 결론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대-대협력’을 강조하고, 몇몇 CEO들이 공감을 표시해도 기름과 물이 과연 섞일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벌써 ‘대-대협력’이 현실적으로 힘든 까닭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기도 한다. 협력을 하고 싶지만 제품의 표준이 달라 공유할 수 없다든지,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든지 등 일견 머리가 끄덕여지는 이유들이다.
물론 ‘대-대협력’은 현실적 한계도 많다. 비즈니스 세계는 협력보다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전쟁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일본에는 도시바와 마쓰시타가 합작한 디스플레이업체 TMD가 있다. 캐논과 도시바는 ‘SED(표면전계디스플레이)’라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공동 개발하기도 했다. 대만 모니터업체들도 가격만 좋으면 라이벌 기업 계열사의 부품도 가리지 않는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대기업의 생존게임은 너무 감정적이고, 맹목적인 면이 없지 않다. 문제의 발단에 대해 대기업들은 서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에 대한 원인 전가가 건널 수 없는 불신의 골을 지금까지 키워왔는지도 모른다.
‘대-대협력’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전 분야의 협력이 아니다. 그동안 감정싸움 때문에 놓친 실리만을 찾아보자는 지극히 실리주의적인 발상이다. 머리를 맞대보고 공통분모가 없으면 그만둬도 된다. 해보지도 않고 손사래부터 치는 것은 80년대 냉전식 사고방식과 무엇이 다른가.
가뜩이나 한국경제는 ‘샌드위치’ 위기론에 휩싸여 있다. 일본, 중국 등 외부의 적과 싸워도 힘이 부칠 판국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식의 우리 대기업들의 편가르기가 글로벌 경쟁에서 과연 득인지 실인지 이제 한번 따져볼 때가 됐다.
장지영기자·디지털산업팀@전자신문, jya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