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의 ‘대학살사건’으로 불리는 총기 난사사건은 총구가 권력이나 자기 방어 대신 인간의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만을 남기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국 서부 개척정신의 대명사인 카우보이와 총기사용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살아남아 미국인의 총기 사용을 막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81년 조직된 미국총기협회(The National Rifle Association of America) 같은 압력단체들의 로비는 미국 총기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영화 ‘벤처’의 명배우 찰톤 헤스톤 같은 배우까지 가세했다니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인간에게 버젓이 남 앞에서 보여주고 싶어하는 이러한 물리적 힘을 과시할 수 있게 해주는 재산인 총의 확보가 다른 수단보다 반드시 월등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50년대부터 반도체와 전자산업의 급격한 발달이 이어졌고 여전히 휴대폰·MP3P·게임기 등에 들어가는 각종 반도체 칩의 크기는 날로 작아지고 있다. 요즘엔 작아지면서 날로 싸지는 것으로 디지털카메라·게임기·휴대폰·메모리카드 같은 것이 꼽힌다. 하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갖고 싶어하는 것으로 전자악기가 몇손가락 안에 꼽혔다.
1887년 당시 36세였던 일본의 한 젊은이는 도쿄에서 오사카로 이어지는 한 어촌마을 시골학교에서 값비싸게 구입한 미국제 수입 오르간이 고장나자 이를 고치게 된다. 고장난 오르간을 철저하게 조사해 각 부분을 매우 세밀하게 그려둔 그는 악기를 실제로 만들고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회사를 차렸다. 일본 최초의 전자오르간은 그렇게 시작됐다. 2명의 CEO가 교체되고 모치다라는 걸출한 엔지니어를 만나면서 야마하의 신화는 시작된다. 1851년 오늘 태어난 야마하와 그 회사 직원들이 ‘좀더 싸게 좀더 아름다운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100년 이상 아름다운 화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굴복시켜 왔다. 반면에 미국의 총기 개발자들은 3초에 10명까지 쏠 수 있는, 즉 더 싸게 더 많이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다. 1851년 오늘 태어난 일본 전자오르간의 아버지 야마하는 이 어둠의 무기에 대해 어떤 말을 할까.
이재구 콘텐츠팀장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