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기업 협력 필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조만간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부터 구체적인 협력 모델이 마련될 전망이다. 또 융합산업·미래성장 분야에서도 지식재산권 공동활용 및 국제표준화 협력 등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대기업의 수익성이 하락 기미를 보이는데다 협력업체(중소기업)의 자구 노력이 맞물리면서 정부가 관련 정책을 강력 추진키로 했기 때문이다.
◇공통 전략기술 발굴 등 추진=대·대기업 협력 논의가 가장 활발한 곳은 디스플레이 분야다. 오영호 산자부 제1차관은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 양대산맥인 삼성·LG 경영진을 만나, 큰 틀에서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시장조사 및 전략기술의 공통 발굴을 추진하고 연구개발(R&D)과 기획을 공통적으로 진행할 싱크탱크 조직을 조만간 출범할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가칭) 내에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김용근 산자부 산업정책본부장은 “다음달 중순 김영주 산자부 장관과 디스플레이 업계 최고 경영자들이 만나 구체적 협력안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5월 중순은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 지역순회 설명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공동구매·지재권·표준화도 협력=이어 23일에는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주관으로 삼성과 LG의 구매담당 책임자들과 산자부 디지털융합산업팀장과의 미팅이 열린다. 대·대협력 차원에서 공동 구매 등이 논의될 수 있는 자리다.
융합 신산업·미래 성장분야에서는 공통 기술에 대해 지재권을 공동 활용하고 국제 표준화에 함께 대처하면서 글로벌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쪽으로 틀을 잡았다. 개별적으로 요소기술 개발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국제 무대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면서 기술 주도권과 시장 선점을 노린다는 게 골자다. 산자부도 한미 FTA를 계기로 업계 공통 발전 방향을 잡기 위한 다양한 협력안을 발굴 중이다.
◇열쇠는 삼성·LG에=그러나 실질적인 협력의 키는 철저히 삼성과 LG 등 대기업이 쥐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통부가 통신사업자를 압박하는 데 사용하는 ‘규제’ 같은 권한이 산자부에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기업과 정부가 공통 R&D센터를 만들거나 해외 원재료 공동 구매를 통해 비용절감을 꾀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안은 아직 구체적 성과를 내는 단계는 아니다. 김호원 산자부 미래생활산업본부장은 “대·대기업 협력은 초기에는 기업문화의 공감대를 넓히는 쪽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대기업에는 경쟁력 강화의 기회가, 중소 부품·장비 협력사에는 추가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는 기회=삼성과 LG는 현재 홈네트워크 표준, 디스플레이 규격 등에서 서로 다른 규격을 택하고 있다. 한국 전자산업은 기업간 협업 없는, 독자 생산비중이 경쟁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이 때문에 중소 협력사는 삼성이나 LG 등 하나의 라인에 수직 계열화돼 있고, 대기업 여러 곳에 납품하지 못하는 구도다. 유망 중소·벤처기업이 매출 규모 확대를 통해 중견기업, 중핵기업화되지 못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대기업 협력을 통해 기초 원천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제품 규격을 통일할 경우 유망 중소 장비·부품업체들은 기회가 월등히 많아질 수 있다. 이는 다시 원가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대기업에도 득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
김승규기자@전자신문, se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