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재벌과 SI

최고 100%. 모 재벌이 계열 SI업체에 가지고 있는 지분이다. 우리 재벌은 대부분 SI업체에 상당한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 한화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아들 세 명이 한화S&C 지분을 100% 나눠 갖고 있다. 빅3 SI업체인 삼성SDS·LG CNS·SK C&C도 오너 지분이 꽤 된다. 삼성전자가 최대 주주인 삼성SDS는 이건희 회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9.1%를 가진 것을 비롯해 딸 이부진, 이서현씨가 4.6%씩 지니고 있다. LG는 구본무 회장 등 특수관계인 네 명이 LG CNS 지분 2.6%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지주회사를 선언한 SK도 최태원 회장이 SK C&C 지분을 44.5% 가지고 있다. 현대도 예외가 아니다. 정의선 현대차 사장과 정몽구 회장이 현대의 SI사나 다름없는 오토에버시스템즈 지분을 각각 20.1%와 10% 보유하고 있다. 롯데·대림·CJ·태광 등 다른 그룹 오너들도 계열 SI사에 깊숙이 발 담그고 있다.

 재벌이 SI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오너 2세가 경영수업을 받기에 안성맞춤이다. ERP 등 각종 전산시스템이 계열사 간에 연결되기 때문에 계열사 경영 현황을 SI업체만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자산을 손쉽게 늘릴 수 있는 점도 재벌의 SI사 진출을 부추겼다. 누구든 SI사를 선호하고 지분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재벌과 SI사의 깊은 긴밀도가 SW강국 코리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벌의 SI사 지배는 세계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국내에만 유일한 ‘캡티브(Captive)’라는 괴물을 낳았다. 그룹 전산물량을 계열 SI사가 거의 독식하는 캡티브 때문에 SI사들은 수익을 보전 할 수 있었고, 또 이 수익을 바탕으로 공공시장에서 출혈경쟁을 자행해왔다.

 SI사들의 출혈경쟁은 협력 SW업체들에 전이, 국내 SW업체들을 영세화시켰다. SW업체들이 황폐하다 보니 우수인력들이 자연히 SW업계를 기피하고 있다. 국내 컴퓨팅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순환 사이클의 진원에 바로 캡티브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캡티브의 부작용은 이것만이 아니다. SI업체에도 부메랑이 됐다. 치열한 경쟁이 없는 캡티브 시장은 SI사들을 온실 속의 화초로 만들어버렸다. 거센 비바람을 맞고 성장한 글로벌 기업과 당연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안 된다. 포천 500대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한 SI사가 우리는 거의 없다. 반면 인도 업체들은 매출 80% 이상을 포천 500대 기업에서 올리고 있다. IT서비스 대신 몇년 전 사라진 SI라는 말을 굳이 끄집어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눈으로 보면 우린 아직도 SI지 IT서비스가 아니다. SI에 컨설팅·아웃소싱 같은 가치를 얹어야 IT서비스인데, 우리 기업은 GE 같은 외국 대형 기업을 컨설팅하거나 아웃소싱할 능력이 없다.

 이래서는 2010년까지 4개의 100대 SW 기업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선언도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SW강국 코리아를 위해서라도 재벌은 이제 SI업체들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캡티브 시장 축소로 증명돼야 한다. 독과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캡티브 물량을 손보기 위해 정부도 이미 한걸음 나선 상태다. 공정위는 오는 7월부터 그룹사가 계열 SI사에 부당하게 물량을 몰아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개정 중이다. 스스로 끊어 내지 않으면 외부에서 당하고 만다. 재벌의 결단을 촉구한다.

◆방은주 논설위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