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김우식 과학기술 부총리 등 250여명의 과기계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톱 브랜드 프로젝트 우수사례 발표회’가 열린 것이다. 이번 행사는 과기부가 출연연구기관들에서 추진 중인 71개의 톱 브랜드 프로젝트 중 8개를 선정해 시상하고, 프로젝트의 의미와 현황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수 사례로 선정된 ‘브레인K(KIST)’ ‘스마트 바이오칩(한국생명공학연구원)’ ‘포토닉스 2020(광주과학기술원)’ 등 8대 프로젝트는 출연연구기관들이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목표가 달성된다면 연구자는 물론이고 국내 과기계에 상당한 자긍심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톱 브랜드’ 프로젝트는 출연연구기관을 ‘세계 일류기관’으로 육성하자는 의미에서 과기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이다. 세계적인 한국인 과학자들을 초청해 과기계 현안을 논의하는 울트라 프로그램과 함께 김 부총리의 의중이 많이 반영됐다. 출연연구기관별로 2∼3개의 프로젝트를 선정해 명품으로 육성하겠다는 게 과기부의 의도다. 현재 33개 출연연구기관들이 제안한 연구과제 중 71개가 ‘톱 브랜드’라는 명패를 달고 있다. 향후 10년간 총 3조7000억원의 예산이 71개 톱 브랜드 프로젝트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열린 우수사례 발표회는 톱 브랜드 프로젝트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이처럼 과기부가 ‘톱 브랜드’를 띄우고 있으나 정작 과기계 안팎의 시선은 좀 불안하다. 정권이 바뀌거나 과학기술정책을 담당하는 수장이 교체될 경우 ‘톱 브랜드’라는 브랜드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톱 브랜드’라는 명패가 없어진다고 톱 브랜드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출연연구기관을 대표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사라질 가능성이 별로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문제는 ‘톱 브랜드’라는 명패다. 차기 정권에서 과기정책을 담당하는 수장의 의중에 따라 톱 브랜드의 운명은 뒤바뀔 수 있다. 굳이 정권 교체나 과기 부총리의 교체가 아니더라도 ‘톱 브랜드’에 대한 과기계 시선은 냉랭하기 짝이 없다. 특히 예산문제는 톱 브랜드 사업의 아킬레스건이다.
출연연구기관들이 ‘톱 브랜드’ 프로젝트를 기관의 명품으로 키운다고 해서 예산이 추가로 지원되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기관 예산을 그대로 쓰는 것인데, 무엇이 달라지겠느냐는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올인하기는 힘들다는 분위기다. 이런 주변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톱 브랜드의 앞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04년 출연연구기관의 전문성과 수월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연구단위(유닛)’ 제도의 도입이 추진된 적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 과기 보좌관이었던 박기영씨가 적극 발의했고, 시범사업도 추진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출연연구기관에 전문연구단위를 설치해 독일의 전문연구조직인 ‘수월성 센터(CoE:Center of Excellence)’처럼 연구역량을 높이고 집중화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지금 전문연구단위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정부의 과기정책에 일일이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모름지기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적인 사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과기정책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과학자들과 연구기관들도 믿음을 갖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다.
지난주 열린 톱 브랜드 행사를 상기하면서 자꾸만 우리 과기정책이 걱정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답을 줬으면 좋겠다.
◆장길수 논설위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