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서영주 전자부품연구원장

[사람과 기업]서영주 전자부품연구원장

 “세상 부모들 마음이 다 같겠습니다만 아버지보다 딸이 더 유명하다는 우스개 소리를 듣곤 하는데, 요즘 그런 얘기 들으면 제 칭찬 듣는 것보다 흐뭇합니다.”

 요즘 한 지상파 방송사의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탤런트 서민정씨의 아버지이자, 최근 30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산하기관인 전자부품연구원(KETI)으로 자리를 옮긴 서영주 원장(55). 아버지보다 딸이 더 유명해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없냐는 질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건 다 자식이 잘나간다고 그러는게 아니냐”며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짓는 천상 ‘아빠’다.

 가정에서는 믿음직하면서도 편한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서 원장은 자녀가 진로를 선택할 때에도 부모의 뜻을 강요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경험과 사례들을 이야기해 주고 결정은 본인이 하도록 하는 스타일이다.

 ◇학창시절, 공부와 연애밖에...=서 원장은 어렸을 때는 참 공부를 열심히 한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중학교 때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집중이 잘 됐기 때문) 방과 후에 교실에 혼자 밤늦도록 촛불을 켜고 몰래 공부하다가 당직 선생님한테서 걸려 ‘잘못하면 불이 난다’고 혼났지만, 그러면서도 격려를 해주던 선생님이 지금도 생각난다고 한다.

 서 원장에게 대학시절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두 자녀의 어머니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기 때문. 대학 2학년 때 미팅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해서 6년 연애 끝에 결혼한 그 과정이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이었다.

 ◇공직시절, 혁신형 중기 기틀을 닦다=벤처 거품이 꺼지고 벤처비리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2001년 말, 그는 중소기업청 벤처국장직을 맡았다. 당시 일부 기업들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벤처환경 자체가 위축된 상태였지만 그는 “벤처 자체는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는 소신이 있었다. 그는 “당시 몇몇 비리 사건의 주역들은 진정한 벤처인이 아니라 돈을 주고 벤처를 사서 어떻게 해보려던 이들”이라며 “그들 때문에 건전한 벤처기업인들이 사회로부터 냉소와 비난을 받는 시대였다”고 회고했다. 2002년 상반기에 벤처확인제를 개편해 무늬만 벤처들을 걸러내고 벤처를 재정비하는 등 건전화 대책을 마련하고 불을 끌 때가 많이 힘들었지만 벤처 비리가 잠잠해지기 시작해 보람을 느꼈다며 말을 이어갔다. 하반기에 전자신문과 함께한 벤처포럼 등 숱한 토론과 조사연구 등을 통해 벤처 재도약 방안을 마련했는데 그때 기획한 모태펀드·세컨더리 펀드·유한책임회사(LLC)형 펀드 등 벤처캐피털 활성화 방안과 주식교환·양도소득세 과세이연 등 M&A 개선방안 등 다양한 정책들이 참여정부의 혁신형 중소기업 정책의 근간을 이루어 나갈 때는 일종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2004년 여름 산업자원부 무역유통심의관으로 복귀했을 때는 원자재 폭등·유가 급등·환율하락 등 3대 악재가 가중돼 수출여건이 몹시 어려웠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 악조건이 모두 겹친 시기여서 주위에서는 수출이 꺾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어려운 시기에 힘든 자리를 맡아 나중에 생색도 못 내겠다”며 위로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걱정했던 수출이 연중에 사상 처음으로 2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연말에 2500억 달러를 초과달성했다. 수출은 순전히 업계가 하는 것이지만 주무국장으로서 환변동 보험을 재정비하고 시장개척단을 꾸려 해외로 동분서주하면서 미력이나마 역사적 과업을 달성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이 공무원 하면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열린 마음으로, 정도를...=서 원장에게 있어 30년간의 공직은 청춘을 바친 일터였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어려움도 많았고 보람도 많았다. 짧지 않은 30년 동안 그는 이곳에서 인생을 배웠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에 봉착할수록 정도를 걷고 열린 마음을 갖고 날마다 새로워지자는 것이다.

 서 원장은 함께 근무하던 대부분의 선배 공무원들을 믿고 존경했다. 그는 “인간적으로는 너나 할 것 없이 일장일단이 있지만 인품, 직무능력,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장점이 있는 분도 있고 한 두 가지 장점이 있는 분도 있지만 (나는) 그분들의 장점 있음을 존경하고 보다 많은 장점을 본받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KETI는 토털 솔루션 제공기관=97년 7월부터 98년 6월까지 1년간 통상산업부 전자기기과장과 산업자원부 생활전자산업과장(현 디지털융합팀)으로 일한 적이 있는 서 원장의 KETI 경영관은 확고하다. 서 원장은 “KETI는 만들어질 때 삼성·LG·대우·현대 등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적게는 몇 백만원에서부터 1억원까지 투자했을 정도로 민간기업의 기대와 소망이 많이 담긴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창립 취지를 충분히 인식해 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KETI가 개발하는 신기술의 판로를 개척하고 이를 통해 신산업을 창출하는 한편, 사업화하고 활성화하는 토털 솔루션 개념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산자부가 산업정책의 틀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KETI는 현장에서 실제 성과를 내는 기관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포부다. 주문정기자@전자신문, mj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