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인당 연간소득 7000달러를 넘어서며 중국 최대의 부자도시 중 하나가 된 상하이. 이 도시는 중국 최대의 소비·교역도시이자 전자제품 유통의 중심항이다.
근대 제국주의 물결 속에서 독일·영국·프랑스 등 열강의 조계지로 찢기운 과거를 흘려보낸 이 도시는 주룽지의 원대한 그림대로 착착 현대화를 진행해 왔다. 10여년 만에 상하이의 상징 동방명주탑이 보여주듯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분위기의 도시이자 아시아 유통허브를 노리는 항구도시로 빛을 발하고 있다. 상하이의 시내도로는 언제나 독일·일본·미국·프랑스·한국 등 글로벌 명차들의 물결로 넘친다. 하지만 제조업과 소비의 도시로만 알려진 상하이에는 나스닥에 상장한 중국 온라인게임 빅3 업체 가운데 2개사가 위치해 있다.
◇부상하는 중국게임=지난달 16일 쌀쌀한 초가을같은 날씨에 비까지 뿌리는 가운데 중국 3대 게임업체 중 하나인 더 나인을 찾았다. 푸동대교에서 10분거리.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변변한 건물 하나 없었다던 이 지역에서 샨다와 더 나인의 건물이 번듯하게 나란히 이웃해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주변은 5∼6층짜리 빌딩들로 이어져 있었다.
이곳에 위치한 더 나인은 넷이즈·샨다와 함께 세계적 온라인게임 업체로 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중국 온라인게임 빅 3중 하나다. 100∼200개 정도라는 중국 게임업계 3위인 이 회사는 나스닥 상장 기업이자 시가총액 8억달러를 기록할 정도다.
더 나인 건물로 안내돼 들어가니 1층은 은행창구처럼 말끔하게 정돈된 고객서비스센터와 사무실로, 2층은 개발실과 휴게실·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각형 건물 안쪽 내부를 4각형으로 비워 놓고 식물들로 가꾼 내부 정원이 이채롭다.
더 나인은 기자가 방문한 다음날로 예정된 일기당천 서비스를 위한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일기당천은 한국의 웹젠과 제휴해 공동 개발한 중국 게이머를 위한 삼국지 게임이다. 개발실에서는 한국의 웹젠 본사에서 온 3명의 개발자가 드나드는 등 서비스 마무리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허쉬동 부총재는 “한국의 게임은 창의력과 개발력이 뛰어나다”고 추켜 세웠다.
그는 한국과 유럽의 온라인게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뮤가 가장 발전된 훌륭한 게임이라고 말했다. 준·뮤 등 한국 게임을 잇따라 소개하면서 재미를 봤고 한빛소프트로부터 헬게이트:런던에 대한 중국내 퍼블리싱권을 확보했다.
전 세계의 25%인 13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 이 거대 국가의 가상공간이 쇄도하는 인터넷 사용자들로 달아오르며 중국 게임회사들도 급성장하고 있다. <표참조>
특히 ‘재미’를 원천으로 삼아 수익을 얻는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활약은 인터넷에서 벌이는 포털들의 웹2.0 전쟁을 방불케 한다. 중국 게임업체들의 급추격으로 한때 독식이라 해도 무방했던 한국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중국내 점유율을 30%로 떨어뜨리며 어느새 한국의 온라인게임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누구도 황금시장을 내버려 두지는 않는 법. 후발 중국 게임업체들의 추격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국 게임의 위상=하지만 ‘좋은 게임은 환영받는다’는 시장의 법칙은 중국시장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리니지·뮤 등에 이어 지난해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받은 그라나도에스파다 같은 걸작들이 중국 게이머들에게도 곧 서비스된다. 한빛이 퍼블리싱한 WOW도 중국 게이머들을 열광시킬 태세를 갖췄다.
향후 3년 내에 중국내 인터넷 사용자 인구는 현재의 2배인 2억6000만명, 게임 이용자는 9000만명에 육박하리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이미 몇 년전부터 NHN, 웹젠, 한빛소프트 등의 내로라 하는 국내 게임업체들이 중국업체와 제휴, 공동개발은 물론 퍼블리싱 협력 등을 통한 중국 온라인게임 마니아 잡기와 수익확보에 나섰다. 물론 계약조건은 두 회사 간에 극비에 부쳐져 알 수는 없다.
한국 업체들의 위상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중국에서의 인기는 여전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쩍 중국내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하는 한국 게임업체들에게 근심의 골이 깊어졌다.
허쉬동 더 나인 부총재에게 “중국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해적판 서비스 때문에 한국업체들이 고민스러워 한다는 얘기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불법 사설서버 운영업자들이 한국에서 개발돼 중국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을 해킹 복사해서 중국 게이머들에게 서비스 하는 것”이라며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데다 법이 있어도 실질적 단속이 안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 불법게임 서버 운용자들은 게임을 정식게임 서비스보다 빠르게 운용, 순식간에 최고 점수에 이르도록 수정해 놓아 게이머들로 하여금 정식게임에 흥미를 잃게 만들고 있다. 한국 게임업체들에겐 암적인 존재인 이 문제는 한·중 양국 정책 담당자들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창의력과 기술력으로 승부해 온 한국 게임업체들과 막 솟아오르는 중국 게임업체들. 한·중 게임업체들 간 승부는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우수 게임과 중국화가 관건=중국 게임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한국 게임을 서비스하는데 있어서는 한 마디로 좋은 게임이면 환영받는다는 게 웹젠 개발실과 임원들의 분위기였다.
이재철 웹젠차이나 대표(총경리)는 “한국 게임업체들이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무엇보다 ‘한국에서 성공한 게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성공한 게임을 중국에 가져와야 하는 이유는 중국의 게임 개발자와 유저 수준이 그만큼 높아져 있기 때문이란다. 사실 뮤와 리니지·WOW 등 한국에서도 성공한 히트작들은 이들 중국 게이머들의 수준을 높였다.
더 나인의 경우 2006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을 받은 김학규씨의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탁월지검’이란 이름으로 곧 서비스할 계획이다.
그는 “요즘 중국에서 한국산 캐주얼 게임과 카트라이더 등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한다.
또 하나 최근 중국 게임사들의 히트작 게임을 보면 중국 고전에 눈을 돌리는 전략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현지에서 접한 게임들을 보면 서유기에서 영향을 받은 게임의 히트작이 잇따랐음을 알 수 있다.
홍보책임자 비비안 왕이 가져온 더 나인 소개책자에는 서유기 기반의 쾌락서유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넷이즈가 대화서유, 몽환서유 등 서유기를 기반으로 한 중국 고전으로 게임 유저에게 어필한 넷이즈의 대박 게임을 낸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는 셈.
이처럼 중국문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중국 게임시장 진출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웹젠과 더 나인이 공동으로 개발해 서비스한 일기당천은 원래 웹젠이 개발한 한국인 시각의 삼국지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인이 개발진이 참여한 웹젠차이나 개발실이 이를 수정했다. 중국 개발자가 본 중국인의 생각을 대폭 반영, 한국에서는 황건적의 난으로 표현되는 원본을 게임에서 제외했다. 황건적의 난은 부패한 탐관오리에 대항해 일어난 민중, 즉 인민들의 난일 수도 있다는 중국적 시각이 대폭 반영됐다.
결과적으로 중국 일기당천에서는 황건적의 난이 등장하지 않는다. 중국사업 성공을 위한 한·중 합작 개발은 이처럼 과거와 달리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터뷰-허쉬동 더 나인 부총재
중국 3위의 게임업체 더 나인은 그림, 조각, 건축, 문학, 음악, 무용, 드라마, 영화에 이은 아홉번째 예술이 게임이라는 철학아래 세워진 회사다. 이 회사 부사장인 허쉬동 부총재를 통해 한중 게임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한국 게임의 실력과 수준을 어떻게 보나
▲한국 게임은 훌륭하다. 한국과 유럽의 온라인게임을 비교·확인하는 과정에서 뮤가 가장 발전된 게임이란 걸 알고 웹젠과 제휴한 바 있다.
-중국에서 최근 해킹서버가 등장해 한국 게임은 물론 중국 게임들을 위협한다고 들었다.
▲해킹툴 제작 단속하는 법률은 있되 집행하기는 어렵다. 중국 내에서 해킹툴 제작 서버를 이용해 한국 게임을 복사해 공급한다. 복제방지에 나서야 할 각 성 정부 당국이 적극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중국 인터넷 게임시장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향후 5년간 인터넷은 매년 20%의 성장세를 예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접속료 전환비율이 크다. 캐주얼게임이 등장하고 사용자 층이 광범위해지고 있는 점 등도 매우 긍정적이다. 중국게임 시장은 향후 4∼5년 간 가파른 성장을 할 것이다.
-향후 게임산업 성장의 요인은.
▲새로운 게임의 등장은 새 유저 발굴의 계기가 된다.
-한국과의 윈윈 열쇠는
▲상호간에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이재구팀장@전자신문, jklee@, 김익종기자, 성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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