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는 예산부족으로 적기에 기기 교체가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부 학교는 주어진 기기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사례도 발견됐다. 취재 과정에서 학급 수와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수도권 A초등학교의 경우 펜티엄4급 PC 30대가 창고에 방치돼있는 상황이 확인됐다. 고학년을 대상으로 1인 1PC를 지급, 시범운영을 해오던 이 학교는 학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교육 효과가 낮다는 이유로 PC를 모두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서울의 B초등학교 역시 펜티엄3급 PC 수십여대를 쌓아놓고 있다. 이 학교 정보화담당 교사는 “노후PC활용(WBT) 차원에서 사용하려고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WBT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이 학교의 경우 앞선 학교처럼 기기를 방치했다기보다는 노후PC를 수업에 사용할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국적으로 펜티엄3급 이하의 PC를 보유한 학교들 상당수가 비슷한 상황일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에 IT기기를 납품하는 전문 IT 업체의 창고에도 주변 학교에서 가져온 쓸만한 PC 본체가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이 업체 사장은 “학교 측의 요구로 일부는 다른 기종으로 교체한 경우도 있지만 쓸만한 PC인데도 무작정 가져가라는 요구를 하는 학교도 있다”라며 “대다수 학교는 아니지만 간혹 정보화나 기기 활용에 대한 인식이 낮은 학교장의 경우 예산 따기에 급급해 면밀한 활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SW)에서도 나타난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방문한 서울 C초등학교 전산실 캐비닛에는 개봉도 안 한 교육용 SW CD가 가득 차 있다. 매년 교육청 지침에 따라 교육용 SW를 의무 구매하지만 콘텐츠 질이 낮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학교 정보화담당 교사는 “매년 200만원 가량이 SW구매 비용으로 들어가지만 쓸만한 콘텐츠를 구하기 어렵다”며 “이 때문에 이 돈으로 차라리 PC 한대 더 사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 학교 교사들은 사설 교육사이트에서 콘텐츠를 찾아 ICT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