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정보화나 교단선진화 프로젝트는 초·중·고등학교를 구분하지 않고 진행돼왔고, 기기도 동등하게 보급됐다. 노후PC 교체 계획 역시 초·중·고등학교를 구분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관리 수준 측면에서는 담임교사가 학급에 상주하는 초등학교가 중·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 더군다나 정보기술을 이용한 ICT 교육 역시 학생들의 집중도나 입시 위주의 학습 분위기 등을 감안할 때 중·고등학교 과정보다는 초등학교 과정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이에 따라 노후 기기 교체에 대한 초등학교 교사, 학생들의 요구도 상대적으로 높다. 본지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학교정보화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이번 탐사기획에서 실제 조사 대상을 초등학교로 국한했다. 그나마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초등학교의 IT인프라 현주소는 교육 백년지대계의 또 다른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마 전국에서 CRT 모니터가 가장 많은 관공서가 학교일 겁니다. 우리만 해도 50개나 있는데요, 뭐.” (전북 A초등학교 정보화담당 교사)
지난 4월 26일 10시 전북 한 초등학교 PC실. 오전 10시 30분 2학년 컴퓨터 활용 교육 수업이 시작됐다. 교사 지시에 따라 40여명의 학생들은 일제히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날은 온라인 수행 평가가 있는 날이어서 학생들의 집중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학구열 때문인지 PC실 온도계는 25도 사이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더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30평 남짓 교실에 덩치 큰 CRT 모니터가 학생 수만큼의 열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 펜티엄3급 CPU가 탑재된 PC도 문제였지만 모니터는 학교 컴퓨터 기기가 어느 정도 낙후돼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본지 탐사기획팀이 전국 23개 초등학교를 방문, IT기기 성능 및 정보통신기술(ICT) 교육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멀티미디어 기기 성능이 심각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머리가 둘 달린 CPU로 비유되는 ‘코어2듀오’ PC가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하며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초등학교 PC는 10대 중 4대가 펜티엄3급 CPU 이하 제품일 정도로 열악하다. 펜티엄3와 코어2듀오 CPU는 성능 차이가 10배 이상이다.
TV의 경우 컴퓨터보다 더 하다. 40인치 미만 브라운관 제품은 물론이고, 29인치 TV도 전체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이마저도 평균 구매 연도가 98년으로 내구 연한(5년)을 배가까이 넘겨 사용되고 있다. 초등학교가 그나마 중·고등학교보다 ICT 교육이 효과적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고3 형이 사용한 PC, 초등 동생이 물려받다=교육부 규정에 따르면 PC의 내구 연한은 최소 5년. 5년이 지나면 새로운 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이 규정은 화석에 불과하다. 예산상 문제로 PC교체 주기는 이에 훨씬 못미친다. 132대 PC 중 70% 가량인 100대가 펜티엄3급 이하인 강원 성덕초등학교는 절반이 5년 이상 된 ‘고물’이다. 하지만, 수억원 수준인 학교 운영 예산으론 새로운 PC를 구매하기 버겁다. 지난 3월 1000만원을 들여 10대를 교체했을 뿐이다. 학교 측은 “예산 문제로 나머지 PC교체 시기는 언제가 될지 모른다”며 “PC 노후로 AS비용이 월 수십만원에 이른다”라고 토로했다.
모니터 상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05년 이후 시행된 민간참여 사업(방과 후 컴퓨터 교육)으로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CRT 모니터가 대세다. 교육청의 지원 예산은 기본적으로 ‘본체 값’을 기준으로 하는 터라 모니터 교체는 엄두도 못 낸다. 서울 A초등학교는 올 초 56대의 PC를 펜티엄4 2.0㎓급 제품으로 바꿨지만, LCD 모니터는 10대밖에 바꾸지 못했다. 20만원이 넘는 모니터 3대를 줄여 PC 한 대를 더 구매했다.
노후PC 앞에선 초고속인터넷도 무용지물이다. 대전의 경우 학교 네트워크 속도가 1 급. 하지만, 일선 교사의 체감 속도는 5Mbps 수준이다. 대전 한 초등학교 교사는 “PC 노후화로 고속인터넷 회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교사들은 실시간 다운로드보다 저장된 동영상을 구동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라고 털어놨다.
◇강산이 변해도 TV는 그대로=서울 강남 8학군 한 초등학교. 땅값만 평당 2000만원 이상인 부자 동네지만 TV는 중고 가격 10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총 29대 TV 중 26대가 지난 2000년에 구매한 것으로 이후 격년으로 3대만 바꿨을 뿐이다. 학교 운영비가 넉넉한 편이지만 대당 수백만원 가량 되는 TV교체는 언감생심이다.
부자 동네가 이러하니 지방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상 장비 보유율이 100% 이상(프로젝션TV 기준 100.9%)이지만, 10대 중 8대는 사용 기간이 10년 이상 돼 쓰기 어려운 상태다. 대부분 TV는 지난 98년 교단선진화 사업 당시 도입됐고 이후 추가 구매가 거의 없었다. 다소 늦게 프로젝션TV를 구입한 대부분의 학교도 구입 시기가 2000∼2001년 사이로 지금까지 7∼8년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TV의 경우 우선 교단선진화 우선 교체 대상이 아니어서 교육청 예산이 아닌 학교운영비 중 남는 돈으로 교장이 구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프로젝션TV의 경우 교실에서 이뤄지는 ICT 교육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데 화질이나 화면 크기 때문에 학생들이 고생하고 있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고장도 잦다. AS기간을 훌쩍 넘긴 TV는 주당 사용시간이 40시간에 이르러 화면이 흐리고 도화지처럼 하얗게 나타나는 백화현상 마저 나타나고 있다. 경북 지역 한 초등학교 교장은 “지난 2000년 구입한 TV를 고치기 위해 제조업체를 찾았지만 부품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라며 “도교육청에 교체를 건의했지만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 지방 자치단체의 경우 전체 1만2000여대 TV 중 29인치 이하 브라운관 TV가 1100대 가량 된다. DLP프로젝션, PDP·LCD TV 등 신기종이 늘고 있지만 교체 비율은 매년 10% 이하다.
◇기기 부실, 파행 수업으로 이어져=멀티미디어 기기 낙후는 수업에도 큰 지장을 주고 있다. 서울 강북 지역 김지수(가명) 교사는 얼마 전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장학사, 학부모 등을 초대, 공개 수업을 진행하던 중 CD롬이 갑자기 정지했던 것. 김 교사는 참관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프린트 수업으로 대체했지만 밤새 준비했던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는 보여주지도 못하고 버려야 했다. 전북 한 초등학교의 경우 영화·드라마 등 영상물을 이용한 강의를 진행하려 했지만 DVD롬이 없어 수업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교사·학생 등 학교 주체들의 불만은 심각한 수준이다. 본지가 전국 60여명 정보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멀티미디어 기기 성능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70% 이상이 성능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 때문에 수업에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변한 교사도 절반이 넘었다. 학생들도 50% 가량이 학교 멀티미디어 기기 성능이 너무 떨어진다고 답했다. 대구시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도 이런 불만을 알고 있지만 전체 정보화 예산의 확보가 어려워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대구시도 올해 60억원을 기기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쓸 예정이지만 기대에 턱없이 모자란다”고 답했다.
◆도움준 곳
서울 중랑초, 서울 송중초, 서울 홍제초, 서울 등현초, 서울 불암초, 서울 신우초, 서울 용곡초, 서울 고원초, 서울 왕북초, 서울 구남초, 서울 신일고, 인천 능허대초, 인천 신송중, 대구 범일초, 경남 토월초, 전북 서신초, 전북 임실초, 강원 성원초, 강원 남춘천초, 강원 경포초, 강원 성덕초, 대전 성룡초, 대전 장대초, 광주 일곡초, 서울시교육청, 인천시교육청, 대구시교육청, 대전시교육청, 광주시교육청, 경남도교육청, 전북도교육청, 강원도교육청, 강릉시교육청, 서울교대, 서울초등학교ICT교육연구회 동작지회, 한국교수학습방법연구회, 서울초등교육정보화연구회
기타 설문에 응하시고, 비실명 취재협조를 해주신 여러 초등학교장 및 교감, 정보화담당 교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