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다. 정보통신부가 CMMI에 관한 보도자료를 냈다. CMMI 같은 국제 소프트웨어(SW) 프로세스 인증 획득에 최대 4000만원까지 지원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9개 업체가 이 혜택을 입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실소(失笑)가 나왔다. CMMI가 국제인증이라고?
80년대 카네기멜론대학이 미 국방부 지원을 받아 만든 CMMI는 소프트웨어와 시스템공학(SE) 분야 대표적 국제평가 기준이다. 최저 1에서 최고 5까지 다섯 단계(레벨)가 있다. 미 국방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이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크게 부각됐다. 상위 등급을 받으면 전문 프로세스를 가진 기업이나 기관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도 CMMI 몸값을 올리는 데 일조했다.
사실 CMMI는 인증이라고 할 수 없다. 프로세스나 SW 전문성을 평가하는 유효한 도구이지만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기업이나 기관에 CMMI 레벨을 부여하는 것은 공인된 기관이 아니라 개인이 한다. 선임심사원(appraiser)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약 400명이 있는데 한국인은 10여명 정도다. 이들은 카네기멜론대가 정한 일정한 절차를 거친 후 선임심사원 자격을 획득, CMMI 레벨을 부여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이 부여하는 레벨을 인증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국제 인증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실제 선임심사원이 부여한 CMMI 레벨 문서를 보면 어디에도 인증(certificate)이라는 말은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일부 기업과 공공기관은 CMMI 인증을 획득했다면서 자랑스럽기라도 하듯 선전하고 있다. 하긴 정부 부처마저 국제인증이라고 하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다.
전문성을 나타내는 데도 CMMI는 일부에 불과하다. 세계적 전자 관련 단체인 미국 IEEE는 SW 전문성을 10가지 지표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중 하나가 바로 CMMI다. 즉 CMMI 최고 등급인 레벨 5를 받아도 100점 만점에 10점밖에 못 얻은 거나 마찬가지다. CMMI에 대한 오해는 이뿐이 아니다. CMMI는 한 조직이나 부문이 받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기업이나 기관 전체가 받는 것처럼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기업 중 레벨5를 받은 포스데이타·삼성SDS·LG CNS는 모두 한 조직이나 사이트가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기업을 CMMI 레벨5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옳지 않다.
이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CMMI는 궁극적으로 소프트웨어 품질이나 프로세스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사실상(De Facto)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글로벌 시장 진출이 화두인 우리 기업으로서는 보다 많은 기업이 CMMI 레벨을 딸 필요성이 있다. 국내 대형 전자업체가 몇년 전 미국계 글로벌기업과 비즈니스하려다 CMMI 레벨이 없어 낭패를 본 적이 있는데 앞으로 이 같은 사례는 늘어날 것이다.
한 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일각에서 CMMI 레벨을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일회성 홍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CMMI 본래 목적에 맞게 내부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보다 중요한 것은 강도 높은 내재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과시용의 CMMI 레벨 획득은 결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CMMI 레벨을 따려는 기업이나 기관에 어느 시인처럼 외치고 싶다. 껍데기는 가라, 그리고 알맹이만 남으라고.
◆방은주 논설위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