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안방에 앉아 마음에 드는 물건을 세계 어디에서든 산다. 기업들도 어디서든 재료·부품을 구해 상품을 만든 뒤 세계 어디에나 판다.
IT가 막연하던 ‘지구촌 경제’를 가속화했다. IT가 선도한 국제화는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 통상협정,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탄력을 더하는 추세다. 앞선 온라인 무역환경이 오프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것이다.
온·오프라인 국제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다. 지난달 체결한 한미 FTA는 ‘거스르지 못할 개방의 분수령’이다. 미국 통신사업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간접투자 100%’가 가능한 만큼 여러 나라가 같거나 더 많은 요구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앞선 IT 서비스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삼아 선진국은 물론이고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로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월경(越境)현상이다. IT가 무너뜨린 국가 간 경계선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더 이상 우리가 ‘허브’가 되겠다거나, 개발도상국을 지원한 뒤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형태(정책)로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편집자>
“베트남에서 ‘한류’가 그야말로 극성입니다. 한국에 관한 문제를 알지 못하면 TV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박양우 문화관광부 차관의 전언이다. 박 차관은 “오는 7월 베트남 한국문화원 등을 동원해 현지 게임 수출상담회를 적극 지원해 축제 분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영상물(TV드라마 등)을 매개체로 베트남 등지에서 자생한 ‘한류’가 게임과 같은 IT 상품을 동남아로 이끌고 있다. 수년간 중동에 나가 땀 흘려 사막을 가꾸고, 배 만들 계약을 따내려 동분서주하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현상이다. 그렇게 시대가 바뀌었고 자연스럽게 월경하는 흐름이 WTO 다자간 무역체계와 FTA를 통해 나라 경제·사회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도 국제협력사업으로 날로 바빠진다. 한미 FTA에 이어 유럽연합, 캐나다 등과 주고 받을 자유무역수위를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올 초 재개돼 4월부터 본격적으로 탁자에 둘러앉기 시작한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통신서비스 협상’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그뿐인가. 노준형 정통부 장관은 ‘2007년 IT 국제협력 전략국가 선정(안)’을 직접 챙긴다. 정통부 안에 관련 연구·학습 동아리도 만들었다. 노 장관은 이에 앞선 지난해 말과 올 초 DMB와 휴대인터넷(와이브로)을 들고 동남아, 유럽을 돌면서 교황청과 이탈리아 시장을 열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인도네시아로 시험용 DMB, 와이브로 단말기가 건너갔다.
이상철 전 정통부장관(광운대 총장)도 최근 정부 특사로 칠레, 아르헨티나에 건너가 DMB 세일즈를 하고 돌아왔다. 정부는 이밖에 노르웨이,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인도, 아태경제협력체(APEC), 아세안(ASEAN),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과 동시다발적인 IT 교류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주요 이동통신사업자들의 국제 로밍이 가능한 국가도 올해 안에 100개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우물 안과 밖’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IT가 온·오프라인 국경을 빠르게 넘나들며 관련 정책을 이끌고 있다. 이 정책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2.0)시킬 정답은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과거 개방시 정부와 반대론자들의 예측을 비교·평가해보자”고 각 중앙행정기관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난 90년대 초 WTO 우루과이라운드로부터 본격화한 개방을 통해 축적된 아픈 경험, 잘된 점을 토대로 ‘올바른 차기 개방정책 방향’을 찾아보자는 제안으로 풀이된다.
유병화 국제법률경영대학원대학교 총장은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있어서 개방이라는 것은 바람직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지론을 편다. 그 ‘필수적인 개방’을 통해 지구촌 경제·사회에 자연스럽게 섞이되 ‘IT 분야 촌장’이 될 길(정책)을 열어야겠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기고-IT로 글로벌 파도를 타자
: 석호익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hoicksuk@kisdi.re.kr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군국주의화가 우리의 신경을 거스른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현이 허망한 구호로만 들린다. 한미 FTA를 둘러싼 이해집단 간 갈등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같은 현안에 대해 IT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동북아 혹은 동아시아공동체 구성에 대한 제안이 간헐적으로 제기되었지만 그 진척은 답보상태에 있다. 한·중·일은 여전히 불협화음 중이다. 그럼에도 동아시아 협력에 대해 낙관적 전망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FTA를 체결하지 않은 동아시아 국가 간 역내교역비중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국가들 보다 높다. 경제·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의 교류는 조만간 공식적인 결속으로 유도할 것이다. 한·중·일 간 장관급 협력이 정례화되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낙관은 지나치게 물질적 통합에 치중된 사고가 아닐까. 중국인의 정신에 중화주의가 자리 잡고, 일본인의 정신에 아시아에 대한 멸시가 남아있으며, 한국인의 가슴에 배타적 민족주의가 남아있는 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깊은 역사적 굴레를 벗어나 미래지향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요원하다.
시공 초월을 특징으로 하는 IT가 글로벌화를 촉진하는 동인이라는 점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IT는 전자상거래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 교역을 확대하는 주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IT가 정신적, 감정적 교류를 촉진하는가? IT는 주의와 관심사가 동일한 전 세계 사람들 간의 공동체 구성과 담론을 용이하게 한다. 하지만 물질적 변화에 비해 정신적 변화는 더 오랜 시일이 걸린다. 여기에 더해 언어차이라는 중요한 장벽이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의 활성화는 지역공동체를 넘어선 언어공동체를 생각하게 한다. IT는 지리적으로 격리되고, 정치적으로 다른 국가에 속해 있더라도 같은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언어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자동동시언어번역 같은 미래 IT기술이 언어장벽을 무너뜨릴지 모른다. 그때가 오면 관심과 사상의 공동체가 융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에게 한국어공동체의 활성화가 당면과제가 된다. 한반도 거주자는 물론 해외 교민과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 사이트에서 풍요로운 온라인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동아시아 공동체 같은 지역화나 한미FTA 같은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IT를 기제로 한 글로벌화란 메가트렌드를 구성하는 물결들이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요원하다고 해서 글로벌공동체가 도래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한미 FTA 체결을 반대한다고 글로벌경쟁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적극 개척하고 이용하는게 현명하다. 파도에 휩쓸리기 보다는 파도타기를 즐기는 것이 낫다.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이 글로벌화의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역동적으로 정보와 지식혁명을 주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