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부장을 수년째 담당하고 있지만 매년 나아진다는 느낌이 없어요. 오히려 빠듯한 학교 운영비에 예산 짜기가 점점 힘들어질 뿐이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애들은 가르쳐야 하는데….”
한국 초등학교 컴퓨터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정보부장 교사’. 그들은 괴롭다. 교무부장 등 다른 보직 교사도 업무가 힘들긴 마찬가지지만 정보부장들에겐 또 다른 고민이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는 점차 높아지는데 학교는 제자리 걸음, 아니 후퇴다. 제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지만 그들을 가로 막는 현실의 벽은 높다.
지난 3일 두 명의 정보부장 교사가 한 자리에 만났다. 임성훈 구남초등학교 교사와 임억린 홍제초등학교 교사. 학교 선후배이기도 한 이들은 오랫동안 정보부장을 맡으며 같은 고민을 나누고 있다.
최우선은 역시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다. 매년 물가는 오르는데 학교운영비에 포함된 정보화 예산은 이를 따라 잡지 못한다는 것. 임성훈 교사가 말문을 먼저 열었다. “학교에서 정보화에 쓸 수 있는 돈은 매년 몇천만원 수준이예요. 한글, MS, 백신 등 기본 SW구입비만 500만원, 인터넷 통신비 700여만원, 잉크, 토너비 수백만원…. 고정비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임억린 교사도 같은 고민이다. “차라리 목적 경비로 일정 금액을 내려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교육용 SW구매 비용과 연수 비용은 일정 금액이 확정되지만, 나머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해야 하거든요. PC가 노후 돼 AS비용도 많이 나가는데…. 제로섬 게임이니 사실 더 달라고 말도 하기 힘들죠.”
AS이야기가 나오니 교사들의 주제는 하드웨어로 넘어갔다. ‘학교 PC잔혹사’다. “지난 97년 정부가 전국 일선 학교에 PC를 대량 공급하기 시작했지요. 당시 애들은 TV만 켜도 우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어요.” 그들은 사실상 우리 사회를 이끄는 쳥년들이 됐다. 학교 PC공급이 ‘대한민국 IT강국’의 기초가 됐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임성훈 교사의 말에 임억린 교사도 고개를 끄덕이다. “지금 아이들이 성장하면 2020년, 다시 사회를 이끄는 주체가 돼있을텐데…. 날로 발전하는 SW를 구형 컴퓨터로 돌린다는 건 말이 안되죠.”
2008년부터 학교장 재량으로 노후 기기를 교체해야하는 상황. 교사들은 ‘민간 참여(방과후학습)’가 그나마 현실적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리업체를 학교에 끌어들이는 데 따르는 부작용도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PC뿐 아니라 TV도 심각하다. “TV는 정말 문제입니다. 2000년 이후 거의 교체가 안됐어요. 동영상을 틀면 잔상이 생길 정도에요. 대당 수백만원이 넘어 바꿀 수도 없고…. 누가 기증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들의 이런 지적은 신제품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통신기술(ICT) 교육을 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한글2007이 나오는 상황에서 ‘아래아한글 1.0’을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임성훈 교사는 학교 선생님들의 교육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들려줬다. “교사들은 연간 60시간이 넘는 연수를 받고 있습니다. 제게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콘텐츠를 학생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지 문의가 많이 와요. 컴퓨터 없다고 수업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초등학교에서 ICT 활용 교육은 자리를 잡았고, 일정 정도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나고 있죠. 이런 교사들의 노력을 뒷받침할 만큼의 지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임억린 교사는 “교육은 투자”라고 말한다. “당장 돈이 많이 들더라도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애들은 좋은 사회를 만들어요. 기업들의 사회 공헌도 중요합니다.”
웹2.0 시대. 정보통신 교육은 학생들에겐 식사 예절만큼이나 중요하다. 교사들의 마지막 발언은 ‘어떤 정보통신 교육이 바른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줬다. 초등학교 IT인프라 지원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최근 불법 SW가 문제라고 하는데. 이건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해요. 친구에게 게임CD를 빌려서 설치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거죠.”(임억린 교사)
“가르칠 분량이 끝난 뒤 5분 정도 남으면 자유시간을 줘요. 그럼 남자애들은 게임을 하고 여자애들은 ‘싸이’를 하죠.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지도해야 해요.”(임성훈 교사)
제대로 된 정보통신 교육을 위해선 제대로 된 지원이 필수다. 사회는 점점 변하고 있는 데 학교는 그대로다. 나날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건 교사의 몫. 지난 10년간 공들인 ICT 교육을 여기서 끝내야하는가하는 답답함이 두 교사의 대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