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북한 쌀 가격과 정보유통

북한의 경제난은 북한을 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북한 내부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외부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한의 시장가격이 월 단위로 파악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몇몇 NGO 단체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북한 내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시장가격의 변동을 파악해서 발표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가 평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좋은 벗들’과 북한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인터넷 신문 ‘데일리NK’다.

 북한은 이제 평양은 물론이고 지방의 주요지역마다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이 시장에서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한의 공식 유통망은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계획경제에 의한 중앙정부의 공급능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에 기인한다. 공식 유통망에 공급할 물자가 없다. 주민들은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기 때문에 시장을 찾게 된다. 오늘 이 시간에도 중국에서 물자가 들어가는 신의주 시장은 북새통을 이룬다. 수입된 중국 상품을 가져가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상인이 모여든다. 이들은 일정 규모의 조직을 갖추고 있다. 전국의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의 주문을 받아 일괄 수입하는 수입상도 생겨나고 있다. 중간 도매상들은 이 물건들을 받아서 소매시장에 판매하고 이윤을 챙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장가격이 형성된다. 대표적인 것이 쌀이다. 북한은 먹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쌀의 시장가격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 시점이면 쌀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 정상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시기가 되면 쌀 가격은 10∼20% 상승했었다. 그러나 올해 4월에는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보였다. 특별히 공급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가격이 떨어진 것은 무엇인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알려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4월에 남한에서 쌀 40만톤이 들어올 예정이라는 소식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쌀 도매상이 그동안 창고에 쌓아두었던 쌀을 대량 방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합리적인 시장예측이 있었다.

 이를 보면서 북한 내부의 변화에 대한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북한에는 이제 공식적인 배급시스템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자체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는 점이다. 외부로부터 쌀을 들여오고 쌀 가격을 시황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조직들이 있어서 수익을 발생하는 구조가 있는 것이다. 둘째, 암시장과 공식시장의 구분이 모호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배급시스템과 암시장이 분리돼 있었는데 이제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서로 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점이다. 신의주에서는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북한당국은 이러한 ‘시장화 현상’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통제하고 세관을 감찰하고 있다. 시장에서 쌀 거래를 금지하는 한편 외화의 직접적 사용 또한 금지하고 있다. 박봉주 전 총리는 경제정책의 실패를 이유로 실각했으며, 새로운 총리가 기용됐다. 나는 이 현상을 시장화와 계획화의 충돌로 본다. 북한지도부는 끊임없이 시장화의 확산을 막으려고 하며, 일반 주민은 살기 위해 시장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 문제는 향후 북한체제를 관찰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다. 과연 시장화의 흐름이 계획화의 제재를 이겨내고 주를 이룰 것인지, 아니면 시장이 약화될 것인지 말이다. 그리고 시장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정보유통과 연결될 것이며, 그 중심에는 이른바 ‘북한주민의 생활 속의 IT’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동용승 SERI 경제안보팀장 seridys@s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