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통신과 방송네트워크 분야에서 이미 커질대로 커진 거대한 산처럼 다가오고 있다. 이미 양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차이나모바일이 3억명, 차이나유니콤(CDMA 포함)이 1억50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차이나모바일의 지난해 순증 가입자 수만 해도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유선사업자인 차이나텔레콤과 차이나넷콤 역시 매출 규모 면에서 글로벌 사업자로 발돋움했다. 네트워크 제국으로 나서는 중국은 이제 통신과 방송네트워크 분야에서 두가지 도전 과제를 맞고 있다. 3세대(3G) 이동통신과 휴대이동방송인데 중국 정부는 각각 독자 규격인 TD-SCDMA와 CMMB를 제안하고 있다. 전 세계 규격으로 검증된 표준을 포기한 대신 지적재산권을 확보한다는 것. 중국이 독자 규격을 내세우며 사용자 층을 확대해 가면서 통신제국을 꿈꿀 수있는 것은 13억 인구에 공무원만 해도 1억3000만명에 이르는 든든한 배경 때문이다. 기술강국 일본이나 디지털 테스트베드라는 한국보다 뒤늦거나 취약한 기술 및 경제구조를 갖고 있지만 13억명의 인구를 바탕으로 일본보다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어하는 중국의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다.
화웨이는 한국에서 온 기자가 묶고 있는 선전 시내 호텔로 아우디 고급 모델을 보냈다. 중국 기업은 우리보다 주먹구구식일 것이란 편견을 깨며 유럽이나 미국의 여느 다국적 기업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이 광둥성 선전시 외곽에 만들어놓은 조그만 ‘화웨이 타운’으로 안내했다.
화웨이는 중국 네트워크 산업 중 가장 강력한 부분이다. 이동통신 사업자인 차이나모바일이 중국 인구를 바탕으로 가입자 기준 세계 1위 이통사로 발돋움한다지만 아직은 ‘내수용’이다.
화웨이는 다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계약 물량이 110억달러이며 이 중 65%가 해외 통신사업자와의 계약이다. 보다폰, 텔레포니카, BT 등을 포함해 전세계 50개 통신사와 거래한다. 전세계 10억명이 화웨이의 네트워크 장비를 통해 유·무선 통신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특히 직원수 6만2000명 중 연구개발(R&D)인력 비율이 48%라는 대목에선 이미 세계를 선도하는 IT기업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화웨이 타운에 마중나온 장웬 과장에게 화웨이의 어원부터 물었다.
그는 “중화할때 ‘화’자에 위하여란 뜻이 ‘웨이’가 합쳐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을 위하여’는 아마 중국인의 네트워크(망) 구축을 위하여 세워진 네트워크 장비업체라는 뜻이었을 법한데 지금은 어느덧 세계 최강의 네트워크업체로 성장한 셈이다.
먼저 화웨이가 만드는 네트워크 장비를 ‘A부터 Z까지’ 소개한다. 쉽게 말하자면 초고속인터넷용 장비부터 IPTV용까지, 2G의 CDMA에서 GSM, 3G, 와이맥스용 장비까지 모두 갖췄다. 여기에 IPTV 셋톱박스부터 휴대폰까지 있으니 통신용으로 쓰이면서 전기로 움직이는 상품은 모두 있다고 해야할 상황이다.
주요 품목별 세계 시장점유율은 NGN 1위(28%), MSAN 1위(34%), IP DSLAM(30%), 옵티컬네트워크 2위(10%), UMTS·HSDPA 2위(17.7%), CDMA450 1위(65%), 서비스프로바이더라우터 3위(5.4%), 와이어리스 CRBT 1위(34%) 등 다 언급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화웨이 본사 데이터센터에선 1350개 서버를 두고 전세계 480개 거점을 24시간 지원한다. 네트워크 이상시 바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화웨이의 기술부터 데이터센터, 심지어 기숙사까지 둘러본뒤 로스 간 이사와 만났다.
기숙사를 지나칠 때는 운동장에서 50∼60여명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운동 경기를 진행 중이었다. 장웬 과장은 “중국 대학생이 가장 들어오고 싶어하는 회사가 화웨이”라고 덧붙였다.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아우디는 퀴리부인거리와 중국 고대 과학자인 총즈대로를 지났다. 화웨이 직원들이 기술기업의 정신을 담아 과학자 이름을 붙여놓은 것.
무엇이 화웨이를 강하게 했는지 궁금해졌다.
로스 이사는 “1988년 화웨이가 처음 시작할 때 쯤 모토로라, 알카텔, 시스코 등 외국 대기업이 중국 네트워크 시장에 진출했는데 외국회사이다보니 상해, 베이징 등 거대도시를 공략했는데 우리는 충칭 등 소규모 도시를 택했다”며 “외국기업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화웨이는 중국 로컬기업으로서 중국 전역의 통신망을 발달시켰다”고 설명했다.
“1997년 해외 진출을 시작했으며 지난해 보다폰과 제휴하기에 이르렀다”며 “값싼 장비 경쟁력이 아니라 장기적인 기술과 밸류를 주는 파트너십”이라고 설명했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가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외부 사람들이 우리를 ‘울프 정신’이라고 부른다”며 “한가지는 팀워크다. 늑대는 여럿이 도와가며 움직이는데 우리는 시장에서도 조화롭게 일하는 방식을 취한다. 지난해 모토로라와 UMTS 합작회사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울프 정신은 또한 항상 기회를 엿보는 자세이기도 하다”고 말을 맺는다.
자리를 마치고 저녁 늦게 돌아오는 차편에서 그들이 준 자료를 살펴본다. 그 중 하나의 제목이 ‘Huawei in South Korea’다. 내용의 요지는 “화웨이는 한국 시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주요 고객과 파트너가 KT, 하나로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드림라인 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중국 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 선상에 서있는 셈이다.
하지만 화웨이는 아직 세계 1위는 아니다. 중국에서 시작해 이머징 시장을 평정했으며 지금은 서유럽과 일본시장에서도 승승장구 중이다. 이제 미국 시장에서 그 곳 로컬기업과 누가 1위인지 겨룰 태세다.
◆GTM을 통해 본 중국의 강점과 약점
광둥모바일텔레비젼미디어(이하 GTM)는 지난 2월 광둥지역에서 우리나라의 휴대이동방송 규격인 지상파DMB를 상용화한 사업자다.
중국에선 베이징과 상하이, 그리고 광둥지역에서 지상파DMB 서비스 상용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네트워크 제국을 꿈꾸는 중국의 잠재력에는 통신과 방송의 장점이 두루 포진하고 있었다. 특히 새롭게 시작하는 휴대이동방송 규격의 격전지인 만큼 중국의 위상도 새로울 수 밖에 없다.
지미 허 총경리는 한국에서 온 기자를 반갑게 맞으면서 대뜸 지상파DMB 단말기 서너종을 꺼내서 보여준다.
“지금 출시한 단말기는 모두 한국산”이라며 “한국 기술이 녹아들어있다”고 말했다. 5월에는 중국시장에 레이콤이 만든 지상파DMB 단말기를 출시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의 지상파DMB 비즈니스 전망은 일단 장밋빛이다. 거대 소비시장 중국이 바로 그의 앞마당이기 때문이다. GTM이 서비스 영역으로 사업권을 받은 광둥성의 경우 인구는 1억1000만명이고 TV가시청가구 1200만명, 이동통신가입자는 8000만명이다. 광둥성은 중국 전체 GDP의 9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한편 수출의 31%를 도맡는 중국에서도 상위 경제권 지역이다.
지미 허 총경리는 “월 30위안(3900원)을 받는 유료서비스를 시작했으며 광둥성이 한국 전체와 비교해서 인구가 3배이기 때문에 향후 1∼2년내 분명히 200만 가입자를 넘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물가를 비교했을 때 월정액이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긍이 가는 논리다. 누구나 알고 있는 중국의 강점이다. 그렇다면 현재 몇명이나 가입했을까.
그는 “아직 초기라서 4월말 시점으로 1000명 정도”라며 “베이징도 우리보다 먼저했지만 아직 4000∼5000명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지상파DMB의 가장 보편적 수신단말기인 휴대폰 형태가 아직 출시되지 못한 까닭이다.
“아직 중국 신식사업부에서 비준을 못받았다”는 지미 허. 중국 정부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CMMB란 휴대이동방송 규격을 지난해부터 드라이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CMMB를 표준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지적재산권 보호 등이 이유다. CMMB를 미는 정부의 방침 때문이라고 탓할 수는 없지만 신식사업부는 지상파DMB폰 비준을 하지 않고 있고 GTM은 지상파DMB 대세몰이에 나서기 힘든 형국이다.
“중국이 지난해 하반기에 표준이 인정되고 이제야 상용 준비 중인 자체 규격으로 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볼멘소리를 한두마디 하더니 입을 닫는다. “정부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는 것.
GTM의 지미 허 총경리의 인상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닌 이유에는 이처럼 지상파DMB 비즈니스에 중국 정부의 그림자가 함께 서려있기 때문이다.
지미 허 총경리는 인터뷰 내내 “우리를 소개할 때 지상파DMB라고 해선 안된다”며 다매체형DAB라고 강조했다. 본래 지상파DMB는 기술적으로 DAB(디지털오디오방송)에 기반한다. 즉, 오디오를 보내는 물리적 구조를 그대로 채택해 그 위에서 동영상(방송)을 내보내는 것이라 그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GTM은 또한 우리나라의 방송위와 비슷한 광전총국에서 DAB 라이센스를 받았다.
그렇지만 행여 지미 허 총경리가 중국 정부가 지지하는 CMMB가 휴대이동방송규격인데 GTM이 지상파DMB라고 하면 마치 대립하는 모양새를 띨까봐 우려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중국이 주장하는 ‘차이나 스탠더드’가 중국의 잠재력을 맘껏 활용할 기회와 시간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의 자체 표준 자신감은 수긍할만큼 강점이기도 하면서 글로벌 스텐다스와 점차 멀어져가는 그들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재구팀장@전자신문,jklee@etnews.co.kr, 김익종기자, 성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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