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나를 가다]2부 치솟는 용, 중국⑨중-한류(中-韓流)

선전에는 전자제품이라면 부품이든 완성품이든 전세계 브랜드를 모두 구할 수 있다는 전자제품유통단지인 ‘전자성’이 있다. 전자성 상가의 내부 전경.
선전에는 전자제품이라면 부품이든 완성품이든 전세계 브랜드를 모두 구할 수 있다는 전자제품유통단지인 ‘전자성’이 있다. 전자성 상가의 내부 전경.

중국 비즈니스를 한국 기업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성사시키던 시대는 이제 갔다. 어느새 중국 기업과 중국 소비자를 아우르는 마인드로 중국에 진출해도 쉽사리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한국의 보편적 기술을 내놓고 중국에서 통하던 시대도 더이상 아니다. 자동차와 휴대폰 등에서 보듯 1년은커녕 제품이 온라인 상에 소개되자마자 짝퉁이 나오는 나라 중국에서 기존의 보편적 기술과 제품으로 경쟁하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다. 수년 전만해도 한·일에 비해 10% 미만이었던 임금은 어느새 마구 부풀어오르면서 진출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했던 일본 소니와 혼다의 본국 유턴은 이제 더이상 뉴스도 아니다. 어느 새 부담스러워진 중국의 고임금에 중국 업체들의 짝퉁과 추격에 시달릴 바에야 차라리 고부가 기술로 본국서 사업을 하자는 마인드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 진출 한·일 제조업체의 최대 생산 진출 거점으로 주목받아 온 선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2년간 산 현지인은 “중견 제조업체 생산거점으로는 일본 회사가 한군데 정도 남아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국 제조업체도 마찬가지. 대만 EMS 업체의 선전 지사장은 “초기에 값싼 인건비만 노리고 임가공만을 위해 들어온 업체들은 모두 베트남 등으로 떠났거나 떠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소비자가 아닌 중국 기업과의 비즈니스 협력, 고유한 첨단 기술 확보 등이 그만큼 아쉬워지는 이유다.

 ◇B2B에 눈돌려라=“이제는 중국 기업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에 도전해야 한다.”

 최근 중국 시장에 진출한 스카이맥스의 이상호 사장은 “중국에서 한국 기업을 위한 비즈니스가 아닌 중국 기업과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에 들어올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그는 새로운 도전으로 설명했다. 선전과 동관, 광저우 등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한계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만난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진출했던 대부분의 중소·중견기업들은 한국의 대기업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라며 “이들은 좀더 싸게 제조하기 위해 중국에 왔으며 중국에서 생산을 하면서 중국 기업에게 공급한 사례는 최소한 여기 선전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즉, 중국에 있으되 중국 시장은 거기 없었던 셈이다.

 동운의 명경식 지사장도 생각이 같다. 동운은 카메라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제작한다. 명 지사장은 “선전에 지사를 낸 이유는 현지 중국 업체를 상대로 한 비즈니스 기반을 닦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중국에 임가공 및 저렴한 인건비만을 노리고 진입한 우리 중소업체들이 1세대며 그들은 절반의 실패를 한 상황이다. 그들에게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은 없었으며 단순히 생산 거점만 존재했다. 이제 중국 시장을 노린 2세대 중소·중견업체들의 도전이 막 시작되는 상황이다.

 ◇‘콴시(關係)’는 여전히 중요하다=하지만 중국 기업과 거래선을 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른바 중국내 비즈니스의 기본인 ‘콴시’ 때문이다.

 콴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일컫는다. 한 현지인은 “중국에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며 “콴시가 없다면 아무리 제품이 좋다고 해도 관청이나 거래 기업에 납품할 수 없으며 콴시만 좋다면 안 될 일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콴시’는 당연히 중국 토종 기업이 강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과 제도가 지배하는 시장경제로 전환되고 있는 최근의 중국 경제 발전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계획경제 속의 이야기로만 생각되는 콴시가 중시되는 것은 의아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콴시를 무시하고는 비즈니스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콴시가 좋지 않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인게 또한 어려움이다.

 명 지사장은 “중국은 세계적인 공장이자 시장”이라며 “선전은 1인당 소득 수준이 8000달러가 넘는 도시며 중국에는 1억5000만명의 구매력있는 소비자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제는 중국 현지 기업과 경쟁해서 뚫어야할 시장인 셈이다.

 ◇새로운 모델 형성 중=새롭게 주목받는 중국 시장 진출의 모델 중 하나는 ‘한국 연구개발(R&D)-홍콩 금융·무역-선전의 생산공장’이라는 그림이다.

 홍콩은 중국의 1국가 2체제 정책에 따라 반환 이전과 마찬가지로 세계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한발 나아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웨이’로서 발돋움 중이다.

 우선 홍콩의 이점을 살려 ‘콴시’ 등 비즈니스 관행이 복잡 미묘한 중국에 직접 들어가는게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 관행에 따르는 홍콩에 본사를 둔다는 것. 선전 등 중국의 생산 도시들은 이미 전자제품 제조 등에서 인프라가 충실하게 갖춰져 있어 이를 활용한다.

 아직 한발 또는 반보 정도 앞선 기술력을 한국내 R&D에서 유지하는 전략인 셈이다. 중국 시장에 진입키 위한 열쇠로서 홍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대두되는 것.

 KOTRA의 신환섭 홍콩무역관장은 “홍콩은 정보·물류·금융 중심지이며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광둥성에 홍콩인 20만명이 들어가 활동할 정도로 밀접하며 우리도 홍콩의 물류·금융을 바탕으로 중국에선 생산·유통을 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말했다.

 홍콩과학원의 청슈롱 부원장은 “홍콩은 그동안 금융과 무역의 글로벌 허브였으며 앞으로는 기술과 이노베이션의 허브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과학원은 홍콩 정부가 5년전 15억달러를 지원해 만든 기술 허브다. 그는 “전세계의 하이테크 기업이 홍콩에 와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그 성과를 가지고) 중국 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역할을 홍콩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JKT 박정식 회장

 중국 안후이성 우호시에 소재한 JKT 본사는 요즘 14만평의 대지에 짓는 생산공장 및 연구소 마무리 공사로 한창 바쁘다.

 JKT 본사는 3D영상부양시스템 제품 생산 1·2라인, 4개 연구동, 기숙사, 영빈관, 공원, 골프장 등을 갖춘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3D 생산공장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박정식 JKT 회장(56)은 3D영상부양시스템 기술에 착수한 지 9년만인 지난해 말 상용화 기술을 완성했다. 그는 이어 “6월 말부터 전세계에서 몰려올 3D영상시스템 수요에 대응한 프린트 원판 제조 공정이 이어질 것”이라며 그동안 감춰 놓았던 세계적 기업으로의 성장 구상을 털어놓았다.

 JKT가 개발한 3D영상부양시스템은 크게 3가지로 활용된다. 첫째, 위변조 방지를 위한 입체 영상을 종이나 플라스틱 등 어느 제품의 표면에라도 인쇄할 수 있는 프린트 원판 제조 기술이다. 이를 이용한 3D 로고를 부착하면 가짜는 발을 붙일 수 없다. 화폐·유가증권·상품권 발행자들이 모두 잠재적 수요자가 된다.

 둘째로 3D 디스플레이를 이용하는 산업이다. 쉽게 말해 3D 안경을 안쓰고도 3D 영상을 보게 해주는 기술이다. 게이머 등 디스플레이 사용자에게 엄청난 시각적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원하는 공간 어디에나 원하는 크기로 광고판을 대신할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사실 국내에서도 3D영상부양시스템 개발을 했다고 밝힌 곳이 많았지만 JKT처럼 이런 기술을 모두 구현하는 기술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 회장은 “일례로 휴대폰에 사용하는 기술의 경우 영상이 휴대폰 디스플레이 상에 뜨더라도 3D 문자를 띄우지 못하면 상품성 없는 반쪽짜리 3D영상부양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3월 기술 개발 발표 이후 전세계 500여 업체에서 러브콜을 받음으로써 390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고생한 성과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사실 전문가들도 “전세계 3D그래픽 최고의 잔치인 시그래프(SIGRAPH)에서 조차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결론났던 기술”이라며 그동안 성공 여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을 정도다.

 중국의 중화담배 등과 계약을 마치는 등 3D 영상 관련 시장에서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박 회장은 “이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은 물론 세계를 향해 달리는 기업으로 내닫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는 지난 90년대 말까지 장건택이란 이름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에 진출해 베이징 지하철 등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해 SI 및 NI 비즈니스를 했지만 “NI, SI 비즈니스는 결국 다국적 기업들의 제품을 중계해서 파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후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선다. 독자적인 기술로 승부를 걸지 않으면 결국 이 넓은 중국 대륙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는 그의 글로벌 철학의 발로는 결국 오늘날 중국은 물론 세계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그는 “보편적으로 중국 진출을 꾀하는 기업은 한국에서 한물간 제품이나 기술을 가지고 진출하지만 중국은 한국에서 선보이지 않은 신기술이 아니면 중국 시장 도전은 무모하다”고 말한다.

 특히 박 회장은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제품을 출시하는 순간 하루도 안되어 그 다음날 바로 위조제품이 나온다는 것을 늘 지켜봐 왔다”며 “3D영상부양시스템만이 그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고 아직 전세계적으로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 최경군 사장의 지휘하에 개발에 성공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