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자지불 인프라를 구축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결단의 순간이 도래한다.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면, 과도한 자신감과 욕심을 절제하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회사는 더욱 건실해지고 성장했던 것 같다.
전산학을 전공하고 데이콤에서 10년간 소프트웨어 개발과 연구 업무를 하던 중, 1994년경 인터넷을 알게 됐다. 이 중 특히 전자상거래를 지원하는 전자지불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당시는 미국도 인터넷상의 전자상거래·전자지불이 막 시작되던 단계였으므로 국내에는 인터넷 쇼핑몰조차 없을 때였다.
쇼핑몰을 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많았지만 온라인 구매를 완성할 전자지불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다들 어려워했다. 결국, 인터넷상의 전자지불이라는 인프라 없이 전자상거래가 발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자지불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됐다.
당시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공동으로 만든 SET라는 기술이 전자지불 기술의 표준처럼 인정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개발자의 경험에서 볼 때, 이 기술은 이론적으로는 좋았으나 실제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웹 기술과 호환되어 편리하면서도 보안성이 높은 전자지불 프로토콜을 설계하고 개발해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당시 산학연 모든 사람들이 표준으로 인정하는 기술을 따르지 않는 외롭고 힘겨운 여행이기도 했다.
이것이 이니시스의 이니페이(INIpay) 서비스였다. 이렇게 시작한 이니페이 서비스는 98년 서비스를 시작으로 10년 가까이 시장점유율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국내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전자지불 시스템을 만들어 서비스하는 아이템은 사업 초기 자금의 규모상 쉽지 않은 판단이었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어야 전자지불 서비스를 통해 수익이 생길 수 있지만 새롭게 창업한 소기업이 장기적인 투자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업한 지 1년 후, 전자지불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회사를 만들면 2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투자가가 나타났다.
상당한 지분을 넘겨야 했지만 그 정도 자금이면 전자지불 서비스를 안정화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이니시스를 설립했다. 내가 100% 지분을 소유하지는 못했지만 그 자금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니시스는 없었을 것이며 국내 전자지불 인프라가 국산화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벤처 열풍이 불었던 2000년 초부터 지금까지 많은 벤처 창업자들을 만났지만, 창업자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혼자 갖겠다는 욕심으로 자본 투자의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그들은 결국 어려움을 겪다가 좋은 기술과 사업을 소멸시키고 말았다.
필자의 사업 히스토리를 돌아보면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과도한 자신감과 욕심에 대한 절제와 양보의 결단을 통해 회사가 건실해지고 성장했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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