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운명의 장난에 의해 목동 신세가 되었지만, 트로이의 왕자였던 파리스는 그의 지체에 걸맞게 심지가 바르고 판단력이 뛰어난 청년이었기에 미인 콘테스트의 심판관으로 추대됐다. 가장 예쁜 여인에게 주어지는 황금 사과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권력과 재물을 파리스에게 약속했는가 하면, 아테네는 지혜를 제의했지만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의 미인계에 넘어가고 만다. 10년간에 걸친 인류 최초의 잔혹한 전쟁인 트로이 전쟁은 미인으로 칭송받고 싶은 여인들의 자만심과 미인을 차지하려는 사나이의 욕심 때문에 생긴 재난이었다.
외모를 돋보이게 하고 싶은 욕구는 시대와 연령, 남녀 구분 없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심지어 짐승이나 초목도 외양을 잘 가꿈으로써 종족 보존에 이용하고 있다. 수컷공작이 깃을 둥글게 세우고 크게 날갯짓을 함으로써 자신을 과시하는 것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공작의 긴 꼬리와 사슴의 커다란 뿔이 겉으로는 근사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존경쟁 투쟁에서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외모가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인식과 지각의 체계를 왜곡시키는 현상을 ‘후광 효과(halo effect)’라고 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는 “기존에는 인종·성·종교에 따라 사람 차별을 해 왔는데 이제는 외모가 새로운 차별 요소로 등장했다”면서 이러한 외모 지상주의를 ‘루키즘(lookism)’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외모가 잘생긴 사람은 친절하고 정직하고 영리하다고 평가받으며, 심지어 같은 범죄를 저질렀어도 용모가 뛰어난 사람은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의 판결을 받는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능력보다는 예쁘고 날씬한 몸매에다 화려한 차림새가 경쟁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길거리의 광고 전단만 해도 미모의 아가씨가 나눠줄 때 수령해 가는 비중이 훨씬 높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방송사의 사과 방송은 여성 앵커가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 중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1%도 안 될 정도로 만족도가 낮아서인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 여성이 화장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수도권 여성 70%가 자신의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뷰티 산업은 연간 7조원을 웃돈다. 머리손질이나 장신구 구입비가 신문을 포함한 읽을거리 구입비의 5.7배나 되며, 15년 동안 성형의사도 5배로 늘었다. 요즘은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 여성들도 성형 대열에 참여하기에 성형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 성형 투어 관광단이 찾아올 정도다. 최근 한류(韓流) 열풍을 타고 한국의 연예인들이 우상화되자 중국에서는 거래처 자녀들을 한국에 초청해 성형수술을 시켜주는, 이른바 ‘성형 접대’도 등장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에다 외모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인식되면서 방학을 이용한 학생들의 성형수술이 크게 번창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 시내 고교생 40.3%가 성형수술을 원하고 있으며, 졸업 선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이 시술을 통한 몸매 교정이라고 한다. 특히 성형수술로 새 삶은 얻은 여성의 성공 스토리를 그린 일본 만화 ‘미녀는 괴로워’와 같은 이름의 한국영화가 흥행하면서 학생들 사이에 미녀 신드롬이 번져가고 있다. 성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하면, 방학기간에는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뤄 새학기가 되면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모습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이 같은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주범은 텔레비전이라는 것이 한국여성민우회의 주장이다. 한국여성민우회의 미디어 운동본부가 공중파 4개 채널의 82개 방송 프로그램을 모니터한 결과 여성 출연자들은 대부분 젊고 예쁘고 마른 몸매였다고 한다. 외모에 따라 역할의 중요도가 결정되는 듯한 느낌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러한 외모 가꾸기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남성들도 ‘꽃미남’을 향해 부나비처럼 성형외과를 맴돌고 있다.
어쨌든 내면의 정신보다는 겉치레 외모에 몰입하는 사회 풍조는 분명 건전한 사회가 아니다.
◆김동현 한국광고단체연합회 부회장 dhkim@a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