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미래모임]IT산업의 패러다임과 한국의 기회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은 29일 저녁 논현동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이종훈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 실리콘밸리센터 소장을 초청, ‘IT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한국의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모임을 가졌다.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은 29일 저녁 논현동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이종훈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 실리콘밸리센터 소장을 초청, ‘IT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한국의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모임을 가졌다.

 인터넷과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미국 실리콘밸리가 최대 격동기를 맞고 있다. 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이 중요해지고, 휴대폰·디지털TV·유비쿼터스 네트워크 등 디지털 컨버전스가 IT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면서 ‘기술 혁신의 산실’이던 실리콘밸리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대신, 아시아 국가들이 저렴한 인건비와 제조력을 앞세워 신흥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본지가 주관하는 정보통신미래모임(회장 정태명·성균관대 교수)은 이종훈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 실리콘밸리센터 소장을 초청, 29일 논현동 브이소사이어티에서 ‘IT산업의 패러다임과 한국의 기회’를 주제로 5월 정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날 주제발표에서 이 소장은 “IT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스피디’한 기업문화와 앞선 컨버전스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에게는 큰 기회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다= 이종훈 소장은 “최근의 급변하는 IT 패러다임은 기본적으로 게임의 룰을 바꾸고 있다”며 “한국도 새로운 경쟁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소장은 “앞으로는 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며 “단순 하드웨어보다는 반도체, 디지털 콘텐츠, e비즈니스, 소비자가전, 컨버전스 등 블루오션 영역에서 전략품목을 선정, 승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다=기술보다 비즈니스 모델,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이 소장의 지적은 참석자 대부분의 공감대를 끌어냈다. 일본에서 성공한 IT기업으로 꼽히는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의 오재철 사장은 “실제 현지 진출하는 과정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각 국가에 맞는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석우 NHN 부사장도 “웹 운영 능력이나 콘텐츠에서 모두 앞서 있다는 자신감에 해외 진출을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차별화 전략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소장은 “5분 안에 바이어를 설득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경쟁제품과 무엇이 차별적이고,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외 정착, 4∼5년은 걸린다=해외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도 이어져 손대일 유비쿼터스테크놀러지스 사장은 “중견기업 중심으로 해외에 진출, 성공했는데 중소기업은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해외 진출은 돈과 시간의 게임으로 최소한 4∼5년은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면서도 “기업 규모를 떠나 목표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주가관리·M&A·제휴 등 목적이 명확해야지, 일단 나가고 보자는 식은 절대 금물이라는 얘기다.

 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은 “전략 수립이 핵심인데, 이를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가며 해외 전시회를 참관하고 많은 이들을 만나는 수밖에 없다”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한국 상황에 맞는 기업 성공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유승삼 벤처테크매니지먼트 사장은 “흔히들 MS와 휴렛패커드를 IT업계 성공신화로 얘기하지만 이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보다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성공 스토리, 그리고 협업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유 사장은 아울러 해외 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지론을 펼쳤다. 그는 “M&A를 통해 넓어진 인적 네트워크는 차기 사업에 전략적인 자산이 될 수 있다”며 유수 외국기업들의 M&A를 거절한 핸디소프트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

◆주제발표 

연사:이종훈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KIICA) 실리콘밸리센터 소장

주제:IT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한국의 도전과 기회

 

 닷컴버블로 고전을 겪던 미국 IT경기가 2004년을 기점으로 부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상위 150대 기업은 지난해 최고 실적을 올렸을 정도로 호황이다. 벤처캐피털(VC)의 IT 투자도 늘어 지난해 비디오, 웹2.0, 모바일, 바이오테크놀로지 등에 투자한 금액이 2001년 이후 최고 액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금리가 올라가고 있어 대기업은 아주 좋지만 중소기업은 어려운 상황이다.

 기술적으로는 컴퓨팅 디바이스와 어플라이언스간에 컨버전스가 이뤄지고 있으며, 웹2.0이 주축이 되고 있다. 통신 분야 M&A도 활발해지면서 관련 산업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50년간 주도해 온 실리콘밸리가 앞으로도 헤게모니를 쥘까? 답부터 얘기하면 ‘아니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IT 패러다임이 과거 50년과는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과거 실리콘밸리는 기술 중심으로 움직였다. 전체 매출의 8∼20%를 투자해 제품을 개발하면 모두 팔렸다. 하지만 지금은 비즈니스 모델이 중요하다. 더 이상 혁명적인 기술은 없으며, 기존에 나온 기술간의 컨버전스만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아시아 국가들이 신제품을 더 빨리 만들어 흥행시키는 상황이다.

 또 본사는 실리콘밸리에 있지만 R&D는 해외에서 아웃소싱하는 형태가 늘고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아시아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아시아가 실리콘밸리에 이은 신흥강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도 이같은 변화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긍정적인 것은 한국의 ‘스피디’한 기업 문화가 새로운 IT 환경에 잘 맞는다는 점이다. 단기간에 제품 개발해 내놓는 것이 관건인데, 한국은 여기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이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간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하드웨어 사업에 치중해 왔으나 이 부문은 전적으로 중국에 밀리고 있다. 따라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최소한 중국보다 6개월 앞서 전략제품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패널:이석우 NHN 부사장

주제:문화적 특성을 감안해야

현재 NHN은 중국, 미국, 일본 3개국에 진출해 있다.

중국은 2004년 5월 현지 파트너를 통해 총 1000억원을 투자했는데, 3년이 지난 이제서야 수익이 나온다. 너무 만만하게 본 결과다. 중국에 2차원 당구게임이 유행할 때 NHN은 3차원 당구게임을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서비스하려고 보니, 인터넷 속도와 사용자 PC 환경 때문에 게임을 다운로드받는 데만 3일이 걸리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

일본은 그나마 선전해 지사가 설립된 지 7년이 됐다. 지난해 700억원(80억엔) 매출을 기록했고, 수익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첫눈을 인수한 이후 개발인력 50명을 일본어 검색서비스에 투입, 올 11월경 한국에서 서비스하는 것과 같은 포털 서비스를 일본에서 선보이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NHN은 설립된 지 1년만에 해외로 나갔다가 1년만에 실패해 돌아왔다. NHN이 초고속 인터넷 환경에서 웹 운영 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하면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다른 국가 인터넷 환경이 받쳐주지 못했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글로벌 전략이 성과를 내려면 4년은 걸린다. 그래서 성급하게 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한다. 경쟁력있는 서비스나 콘텐츠가 있다고 해서 해외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인터넷 서비스에서는 문화적인 특성을 감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패널:안유환 핸디소프트 사장

주제:될 만한 제품에 끊임없이 투자하라

핸디소프트가 미국에 진출한 지는 8년, 본격적으로 투자한 것은 5년이 됐다. 매출은 1500만달러 규모이며, 올해 BEP를 넘길 전망이다.

미국 FBI를 비롯한 25개국 350개 기관에서 핸디소프트 제품(BPM)을 사용중이며 현재 글로벌 톱5 BPM 업체로 위상을 날리고 있다.

이렇게 핸디소프트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력있는 제품과 워크플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공공기관 위주의 시장 공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일즈·마케팅·R&D·서비스 등 토털서비스를 지원하고, 400억원이 넘게 끊임없이 투자한 것도 성공요인이다. 델파이그룹도 BPM을 향후 10년간 주목받을 소프트웨어라고 지목했지만, 우리는 5년 후 BPM이 DBMS만큼 보편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수라면 첫째는 미국에 진출한 이후 4년을 망친 것이다. 처음에는 서비스 지원 없이 미국인을 채용해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했는데, 이것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둘째는 자본을 끌어모을 기회가 있었는데 자존심 때문에 놓쳤다. 규모가 있는 회사로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어느 정도의 자금 지원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핸디소프트는 ‘대한민국의 박세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제2의, 제3의 박세리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패널: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사장

주제:해외진출의 핵심은 서비스 네트워크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는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은 기업으로서 충분한 자금력 없이 해외 진출했다. 무조건 벌어야 했다.

아이온은 1999년 법인 설립과 함께 해외 진출에 나서 미국, 독일 등지에 사무소를 만들었다.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실패는 당연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은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며, 고객이 원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라는 점이었다. 이후 서비스 체제를 갖추기 위해 3년을 일본에 투자한 결과, 2005년 말 일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 전체 시장규모가 500억원에 불과하지만 22∼23%를 아이온이 점유하고 있다.

일본 외에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도 제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3∼4개국 정도 더 확대될 예정이다.

해외 진출에서 관건은 첫째는 각 국가별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드웨어이건, 소프트웨어이건 모두 서비스라고 봐야 한다. 둘째는 품질이다. 한국에서는 1만개 기능 가운데 100∼200개에 초점을 맞추지만, 미국에서는 1만개 모든 기능이 중요하다. 파트너 정책이나 문서화 작업도 중요한데, 우리나라 기업은 이 부분이 취약하다.

셋째는 국가 브랜드를 확보하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서 선전하는 데에는 국가 브랜드도 한 몫 하고 있다. 대기업이 앞장서 국가 브랜드를 올려준다면 중소기업에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