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IT코리아 2.0](2부)M2M을 향해­⑧미래 예측

 길은 남북을 가리키는 자침(磁針)을 이용해 찾으면 되겠지만, IT가 갈 길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특히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조금 더 큰 흐름을 간파하는 게 과제다.

 하지만 ‘IT 미래 예측’이 녹록지 않다. 거의 모든 기술, 거의 모든 문화현상이 섞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디서 어디까지가 IT이고, 나노기술(NT)이며, 생명공학기술(BT)인지를 더욱 더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A씨 건강 상태를 살펴보고 아픈 곳을 찾아내 병원에 알리며 음식이나 약을 조절해주는 게 IT·NT·BT인지 도대체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을 시대가 10년, 20년 뒤라는 얘기다. 다만 IT는 거의 모든 기술, 거의 모든 문화현상, 거의 모든 삶을 하나로 얽어낼 그물(네트워크)의 밑바탕이 될 게 자명하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 얼마나 더 정확하게 IT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것인가.

 

 “말하자면 우리는 ‘5개년 계획 전문가’입니다. 100대 기술과제든, 200대 과제든 차기 정부가 국민 앞에 내세울 만한 것들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습니다.”

 중앙행정기관 고위 관계자가 자조적으로 비꼬았다. 그는 “때(정권교체기)가 되면 여기저기서 요청이 들어오고, 뭘 어떻게 만들어줘야 할지 매뉴얼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대통령 집권기간에 맞춰 새 정부가 출범할 무렵에 ‘○○○ 5개년 계획’들이 남발하고, IT를 비롯한 과학기술·산업발전전략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는 것. 그래서 예전에 본 듯한, 목표까지 닮은 계획·과제·전략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뒤 중복 투자를 부르고, 나중에는 주무 부처 간 주도권 다툼까지 부른다는 것이다.

 이른바 ‘5개년 계획 쳇바퀴’가 다시 돌 것인가. 일단 변화할 조짐은 엿보인다. 관련 중앙행정기관들이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던 데서 벗어나 사회·문화·환경 변화를 포괄하는 미래 예측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정통부가 미래 사회상과 사회적 요구(needs)를 충족할 폭넓은 ‘IT 예측(Technology Foresight) 2020’을 내놓았다. 그 안에 선진국 IT를 추격하던 나라에서 앞서가기 시작했다는 자신감도 담았다. 이를 통해 인터넷으로 전달하는 냄새, 사람 몸 안에 들어가 내·외과 수술을 하는 로봇 등 52개에 달하는 핵심 IT를 예측해냈다. 이는 국내 IT 전문가 3500여명이 머리를 맞댄 결과다.

 정통부는 이에 앞서 지난 2003년부터 ‘21세기 IT 메가트렌드 연구사업’을 시작해 최근까지 더욱 큰 흐름을 잡아내 전략적으로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이 작업에는 정치·철학·사회·경제학계 400여 전문가들이 참여, 오는 2015년 전후에 일어날 변화(트렌드)를 예측한 뒤 IT 발전전략 수립을 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이버 정치 참여 및 부작용 대책, 경제의 디지털화 촉진, 유비쿼터스 컴퓨팅 사회에 따른 역기능 대책, 자유로운 지식·정보 창출환경 조성 등 많은 정책적 과제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정통부 측 설명이다.

 과학기술부는 조금 더 일찍 미래 예측을 시작, 지난 94년 이후로 3차에 걸쳐 ‘과학기술예측(Technology Foresight) 조사’를 했다. 제3차 조사에서는 무려 3만2000여명에 달하는 국내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했을 정도로 규모도 크다. 과기부는 이를 토대로 2030년 무렵까지 일어날 미래사회 변화, 한국 사회의 요구, 풀어야 할 기술과제들을 뽑아낸 뒤 ‘미래유망기술 21’로 압축,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통해 모든 중앙행정기관과 준정부기관이 목표를 공유한 상태다.

 그런데 과기부 과학기술예측조사에 참여했던 A씨, B교수, C사장 등은 자신들이 예측한 ‘사람 몸 안에 들어가 수술하는 (나노)로봇’과 정통부 ‘IT 예측 2020’의 로봇이 서로 너무 닮았다고 지적했다. 정통부 미래전략위원회에 참여하는 D씨도 ‘유비쿼터스’를 수식어로 삼는 첨단 네트워크 기술들이 “쌍둥이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통부와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측은 “과학기술예측조사 결과는 모든 분야를 조사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술수명주기가 짧은 IT 예측자료로 직접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소한 과기부 기술예측·분석위원회 아래 ‘정보와 지식 분과’에 참여한 전문가들과 정통부 미래전략위원회 위원들이 부처별로 제각각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에 정보 교류가 어려운 것과 같은 상황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NT나 BT, 나아가 사회문화 전반으로 융합·확산하는 IT의 미래를 정통부 및 유관기관만으로 객관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민간 기업연구소 관계자는 “‘누가 주관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과 다툼을 털어내고 IT 관련 중앙행정기관, 준정부기관, 민간기업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국민이라는 하나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을 쪼개 비슷한 결론(미래예측)을 만들어내는 폐단을 접을 때”라고 지적했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메가트렌드-미래연구, 멀리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 최항섭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jesuishs@paran.com

 “‘오는 2005년’, 전 세계는 미국 제국, 유럽 제국, 동북아 제국이라는 3개 제국 간 치열한 경제전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나리오 기획 분야에서 대가로 꼽히는 미래학자 피터 슈와츠는 지난 95년 10년 뒤를 내다보며 이렇게 예측했다. 그의 예언대로 유럽은 유럽연합(EU),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막강한 경제블록을 형성하며 공동발전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중국·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만은 아직 블록 체제로 가지 못하고 미국과 유럽연합과의 경제·외교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신생제국화, 블록화라는 미래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탓이다. 이번 한미FTA만 해도 한국 단독으로가 아니라 동북아 블록으로 미국과 협상을 했다면 그 결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에는 분명 승패가 엇갈린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현안에만 집착해 국가와 민족의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려놓지 못하면, 언제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하에 이미 영국은 총리실 산하에 ‘미래전략청’(PMSU)을 두고 정부의 미래전략을 총괄하고 있으며, 미국은 ‘국립과학재단’(NSF)을 중심으로 20∼30년 후의 기술과 사회 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소강국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미래연구의 체계와 미래시나리오방법론(TAIDA) 같은 미래연구방법론이 정립되어 있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니다.

 우리 정부도 지난 8월 미래대비 마스터플랜인 ‘함께 가는 희망한국, 비전 2030’을 발표하고 부처별로 20∼30년 후의 정책 구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국가적 의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더구나 21세기 들어 IT가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진화함에 따라 우리의 현실이 매일 달라지고 있어 미래가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미래연구다. 국가의 미래비전을 수립하는 것은 미래연구를 실천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미래연구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과에 조급해 하지 않는 지혜다. 분명 미래연구의 결과는 우리가 투여할 비용과 노력에 보답할 것이다. 단 바로바로 그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미래를 내다보는 상상력으로 비행기를 설계한 후, 500년이 지나서야 실제로 비행기가 만들어졌다. 지금 결과물을 볼 수 없다고, 그 결과가 천천히 나타난다고 조급해 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