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57). 그가 돌아왔다. 조직과 후배들을 위해서는 한 몸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그가 우리나라 기업이 수출을 하면서 대금을 못 받을지 모른다는 부담을 보험으로 보장해주는 기관인 한국수출보험공사의 새 CEO가 돼서 모습을 나타냈다.
취임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 사장은 “여기에 있는 동안 많은 일을 할 것이니 지켜봐 주십사”하며 짧고 간단하게 답례를 했다.
취임한 지 불과 20일 남짓인데 벌써 수출보험공사의 중장기 청사진을 그려놓았다. 지난해 체결한 80조의 수출보험계약을 올해는 88조로 끌어올리고 내년에는 100조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사업분야도 단순히 수출 보험뿐 아니라 기술수출, 해외투자, 자원개발 등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수출보험공사는 이미 ‘조환익 스타일’로 돌아가고 있다. 취임 당일 예정돼 있던 고급 일식집 오찬을 설렁탕집으로 변경한 것을 시작으로 해외 지사장들의 상견 인사를 전화통화가 아닌 e메일로 보낼 것을 지시하고 본인도 e메일로 답신하고 있다. 수시로 문자 메시지를 통해 업무지시를 한다. 그의 문자 타자 속도는 20∼30대 수준이다. 가히 중년 엄지족이다. 조 사장은 또 사장과 직원 간 실시간 대화방 구축을 지시하고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직접 업무 소감과 주간 일정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18일(금) 취임 직후 다음 1주일간 예정돼 있던 부서 업무보고도 다음날인 토요일 하루 일정으로 바꿨다. 사장으로서 조기 업무 파악 및 신입 사장에 대한 직원들의 업무보고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인생은 초년에 습득했다=조 사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행정고시 14회로 공직에 입문해 정무직인 차관까지 지낸 인재다. 그러나 그에게도 과거에 아픈 경험이 없지않았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할 때 두 번이나 떨어져 어려서부터 인생의 쓴 맛(?)을 겪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부모님에 이끌려 복싱 도장에 다녔다. 처음엔 몸이 약해서 시작했는데 나중엔 몸이 빠르다 해서 신인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대회까지 나갔다.
“복싱이라는 게 사실 맞는 운동입니다. 아무래도 운동을 하면서 많이 맞기 때문에 거기서 제가 인간이 된 것 같아요.” 중학교를 재수하면서 겪은 좌절감이나 복싱을 하면서 남한테 맞는다는 게 얼마나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는 그는 이런 부분에서 겸손을 배우게 됐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순탄치 못한(?) 공직 생활=그에게 브랜드처럼 따라다니는 ‘2001년의 용퇴’는 너무나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산자부 차관보 시절이었던 2001년 초 인사적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 일으키고 후배들을 위해 스스로 용퇴해 공직사회에서 귀감이 되기도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서 하는 얘기지만 그때 하도 인사적체가 되고 해서 (개인적으로도) 뭔가 한번 바꿔보고 싶기도 해서 결심을 했지만 당시에는 일본 관료들처럼 그런 상황에서 누가 한번 나가면 동기들이 쫙 나가고 해서 그럴 줄 알았더니만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웃어 넘겼다. 사실 조 사장은 사무관에서 과장으로 승진할 때도 두 번의 사양 끝에 과장이 됐다. 금진호 차관 시절 승진 제안이 들어왔지만 함께 유학을 갔던 사람들이 고시기수 선배들이라 극구 사양했고 두 달 후 다시 온 기회도 사양해 ‘미친 X’ 소리까지 듣기도 했다.
◇산업기술재단에서 CEO의 면모를 보이다=차관보 자리를 박차고 나와 한국산업기술재단을 설립해서 사무총장으로 지낸 3년 여간은 그를 CEO로서의 진가를 보여주는 시기가 됐다. 테헤란로 한복판에 한국기술센터를 만들어 입주했고 이후 산업협력, 이공계 활성화, 산업기술 정책연구 등 산업기술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매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2003년 대한민국 기술대전 때는 행사소개를 너무 잘해 나중에 청와대 측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의 브리핑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었다. 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을 하면서 외부 행사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은데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읽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자 피나는 연습을 통해 지금의 그가 만들어졌다. 산업기술재단에서 쌓은 CEO로서의 경험은 2004년 그가 차관으로 산자부에 복귀하는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됐다.
◇새로운 혁신을 위해 모범 보이겠다=조 사장은 수출보험공사에 와서 세 가지에 대해 놀랐다고 한다. 하나는 산자부 시절 주무 공무원으로 업무에 임했을 때보다 규모가 많이 커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수출보험 고객이 우리나라 수출기업뿐 아니라 외국 금융회사라는 점이다. 세 번째는 연간 80조 이상의 수출보험 계약을 체결하는 기관이면서도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그래서 CEO가 직접 홍보전선에 뛰어들겠다는 각오다.
조 사장은 “보면 의외로 포스코나 하이닉스반도체 같은 대기업들이 보험을 활용 안 한다”며 “사장도 보험판매원이 돼서 뛰어다니면서 알리는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데 따른 불안을 해소하는 ‘불안 청소기’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조 사장의 꿈(★)이 이뤄질 것 같다.
주문정기자@전자신문, mjjoo@
<프로필>
△50년 서울 출생 △중앙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제 14회 행정고시 △상공부 행정사무관 △미국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주미대사관 상무관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실 부이사관 △대전 EXPO 파견 근무 △통상산업부 공보관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통상산업부 중소기업정책국장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 △산업자원부 차관보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산업자원부 차관 △한국산업기술대학교 명예 경제학 박사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현재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박사과정 수료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