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에서 잘 나가려면 ‘~지’ 출신이어야

“‘∼지’ 출신을 아시나요.”

요즘 LG전자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잘 나가려면 ∼지를 나와야 한다”는 말이 우스갯 소리처럼 통한다. 올초 남용 부회장이 취임후 조직쇄신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엄청난 신임을 주면서 안팎에서 발탁한 이들의 이력을 일컫는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손 꼽히는 로열 패밀리는 역시 지주회사인 (주)LG(엘지) 출신들이다. 현재 대부분 사업본부장(부사장급 이상)들이 과거 그룹 비서실과 LG전자에서 남 부회장과 함께 근무해 본 경험이 있고, 본사의 재무·인사·기획 등 요직을 맡고 있는 임원들도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지금처럼 격변의 시기에도 여전히 탄탄한 입지를 과시하고 있는 배경인 셈이다.

이와 달리 남 부회장이 CEO로 등극한뒤 전에 볼 수 없던 ‘용인술’로 부상한 이들이 유수의 외국계 기업인 ∼지 출신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맥킨지. 오래전부터 맥킨지 컨설팅을 선호해왔던 것으로 유명한 남 부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최고전략책임자(CSO, 부사장급)를 신설, 맥킨지에서 박민석씨를 영입했다. 전략과 마케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남 부회장으로선 그 어떤 보직보다 외부 전문가 수혈이 시급했던 셈이다. 얼마전에는 전사 차원의 마케팅 역량 강화를 위해 ‘인사이트마케팅팀’이라는 보직을 신설, 역시 맥킨지 컨설팅에서 최명화 상무를 영입했다. 지난 수십년간 전세계 소비재 시장의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국적 기업 P&G(피앤지) 출신들은 최근 LG전자 마케팅의 두뇌 역할을 맡으며 밑그림을 새롭게 그리고 있다. 지난해말 한국마케팅부문 DDM 마케팅팀장에 영입된 P&G 출신 이우경 상무와 NHN·P&G·코카콜라를 두루 거쳤던 브랜드 마케팅의 한승헌 상무가 이런 케이스다. 존슨앤존슨 출신 마창민 상무도 정보통신 마케팅의 최전선으로 발탁했다. P&G·존슨앤존슨 등 생활소비재 산업에서 다년간 쌓은 마케팅 노하우가 전통적인 제조업의 영업관행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지 출신들인 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남 부회장의 총애를 받으면서 소위 정통 LG전자맨 가운데 일부는 부쩍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금성사 시절부터 쌓아온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각별한 이유도 있다. 하지만 요즘 내부에서는 워낙 혁신의 요구가 거센 탓에 이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분위기도 사라졌다. LG전자의 한 고위 임원은 “일부 부정적인 시각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외부 전문가들이 그동안 우리가 그동안 갖추지 못했던 전략과 마케팅의 마인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라며 “외형이나 질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시점에 이들의 역량이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