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국-베트남 `상생의 시대`

나와 베트남의 첫 번째 인연은 1968년 월남전 참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월남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수호하려는 자유주의 진영의 의지를 갖고 찾았던 이데올로기적 인연이었다. 그래서 적을 제압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삶과 죽음의 땅이 바로 그 곳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인연은 대학원장 시절 이제 막 자본주의로의 변혁기에 있던 월남을 CEO과정 체험실습으로 방문했었다. 두 번째의 인연을 계기로 확인한 베트남은 자본주의적 체제를 잘 흡수하여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이전하고 있는 모범사례 중의 하나였다.

 이번에 세 번째 인연으로 베트남을 찾았다. 한국은 베트남의 많은 장점(저렴한 노동력·기술·내수시장)을 십분 활용하여 아세안(ASEAN) 10개국으로 한국이 도약해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또한 베트남도 한국의 투자와 협력을 통해 경제발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교역의 범위를 ASEAN을 넘어 ASEAN+3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바야흐로 한국과 베트남은 과거를 뒤로하고 상생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베트남은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단일정당 국가이다. 그러나 사실상 자본주의 요소를 받아들인 국가이다. 베트남은 통일 후 10년(86년 12월) 만에 ‘도이(Doi)모이(Moi)’ (쇄신) 정책을 채택하여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과 대외개방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 결과 88년 이래 연평균 8%대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이제 150번째 WTO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자본주의 성향이 더 확대될 것이며 성장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중국도 그렇지만 베트남을 통하여 체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미 오래 전 얘기지만 구 소련 스탈린 체제 아래서 99%가 국유지이고 1%만이 사유지로 남았는데 그 1% 사유지에서 소련 전체 채소 소비량의 30%를 생산하였음은 체제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사례이다. 베트남도 개방정책 전까지는 쌀 수입국이었으나 도이모이 정책 시행 이후 세계 2위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체제와 경제 운용방식의 변화가 가져다준 획기적인 결실이다. 공산주의에서의 변화는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며 또한 이를 변화의 연쇄반응(chain reaction)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와 국민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 잡힌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베트남과 한국은 참 비슷한 점이 많다. 동일한 한자 문화권이며, 식민지 지배, 중국영향, 민족 간 내전, 폐허 위에서의 높은 고도성장 등이다. 특히 손재주가 뛰어나고 근면하며, 술 잘 마시고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서로 유사하다.

 그들과 우리나라가 이처럼 고도성장에 의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무리 봐도 전후에 남은 것은 폐허의 잔해 위에 남아 있었던 ‘사람’이다. 또 그 사람들은 ‘잘 살아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원래 자본주의적 뿌리에서 경제발전의 용오름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베트남은 사회주의적 전통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도이모이라는 혁신을 통해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싹을 틔우는 모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모판 위에서 베트남은 매년 8%의 높은 성장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39억달러를 수출하고 9억달러를 수입하지만 베트남에 대한 투자는 세계 1위이다. 물론 개방(88년) 이후 투자 누계는 제3위지만 지난해와 올 4월까지는 세계 1위다. 따라서 한국은 베트남의 제6위 교역국가이며 베트남은 우리의 25위 교역 대상국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불가분의 관계가 된 것이다.

 앞으로 한·베트남 관계는 더 긴밀해질 것이다. 특히 한·아세안 FTA 상품협정이 6월 1일 정식 발효됨으로써 서로 좋은 교역조건에서 경제교류를 수행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이다.

 한류스타들에게 열광하는 나라, 한국 드라마 4편을 동시에 방영하는 나라, 우리와 역사적 문화적 공통점이 많은 나라, 이런 베트남에 존경과 신뢰를 갖고 우리가 먼저 투자하고 협력하면 우리에게 큰 선물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염홍철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hcy@pcsm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