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변종

 ‘키메라·토포러·도플갱어·메모리모자이커·타임스키퍼’

 김언수 장편소설 ‘캐비닛’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심토머(symptomer)’가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심토머는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심토머들은 생물학이나 인류학이 규정한 인간의 정의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그들은 현재의 인간과 새로 태어날 미래의 인간 사이, 즉 종의 중간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변종들이다.

 예를 들어, 메모리모자이커는 자기가 가진 기억들을 조작, 해체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불행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한 기억만을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또 소설에는 동면하는 짐승처럼 6개월이나 1년 정도 긴 잠을 자는 토포러, 한순간에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스키퍼,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만나는 도플갱어, 입 안에 도마뱀을 키우는 키메라 등도 등장한다.

 이들 심토머는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들이다. 소설가가 지어낸 완전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독자는 심토머가 전적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스스로도 현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진화의 압박을 받고 있는만큼 심토머와 같은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인류에게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엄청나고 거대한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0년대에 미래학자로 명성을 날린 허머 칸(Herman Kahn)은 30년 전, ‘미래의 체험’이라는 책에서 100가지를 예측했다. 이 중 95개가 맞았고 5개는 틀렸다. 현금자동지급기, 비디오레코드(VCR), 위성항법장치(GPS), 초고속 열차 등이 적중한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효율적인 식욕 및 체중조절 기술로 누구나 원하는 체중을 가질 수 있다’거나, ‘인간도 휴식과 치료 목적으로 겨울잠을 잔다’ ‘모든 사람이 개인 비행기를 소유하게 될 것’ 등은 실패한 예측이 됐다.

 바이오 및 나노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의 두뇌 활동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소설 속 ‘심토머’가 미래에는 현실의 인물이 되는 셈이다.

  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