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논쟁, 더 이상의 연기는 없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케이블TV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 내달 1일부터 셋톱박스와 케이블카드(POD모듈) 분리를 의무화한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셋톱박스 시장이 완전 경쟁체제(오픈마켓)로 가는 첫발을 내딛게 됐다.
11일 미국 케이블TV 업계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케빈 마틴 FCC 의장<사진>은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위해 셋톱박스 내 케이블카드 분리 방침을 확정했다”고 말했다.
FCC는 당초 2005년 1월부터 케이블카드 분리를 의무화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케이블통신협회(NCTA)의 반발과 대정부 로비로 지난 2006년 7월에 이어, 올 7월까지로 시행 시한을 두 차례 연기한 바 있다.
최근 NCTA는 분리 의무화 방침을 오는 2009년까지 연기해달라고 재요청했다. 하지만 FCC 측은 이번에 확실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마틴 의장은 “완전 경쟁으로 가야 소비자가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성능의 셋톱박스를 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류경동·류현정기자@전자신문, ninano@
◆뉴스의 눈
FCC의 이번 조치는 특히 한국 셋톱박스 업계에는 긍정 신호다. 휴맥스 등 국내 셋톱박스 업계는 유럽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반면, 모토로라 등 글로벌 셋톱박스 업체들이 현지 케이블방송 업체와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 사실상 독과점 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는 미국 시장에는 제대로 진출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호중 디지털월드 사장은 “지난해 휴맥스가 현지 위성방송 업체인 디렉TV와 손잡고 미주 시장에 진출, 매출이 거의 두 배가 늘어났을 정도로 디지털 셋톱박스의 블루오션이 바로 미국”이라며 “특히 미주 시장은 나라별로 사양이 틀린 유럽과 달리, 동일 규격의 제품을 수천만대씩 만들어 팔 수 있어 대당 마진도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매력 때문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셋톱박스 업체의 격전장이 되고 있어 요구하는 제품 수준도 높다. 웬만한 제품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지난 수십년간 사이언티픽아틀란틱(SA)나 모토로라 등이 강력한 로비력을 바탕으로 견고한 클로즈드 마켓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넘어야 할 과제다.
따라서 진입 초기에는 현지 업체와 제휴해 시장 진출을 노려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도 현지 케이블TV 업체인 타임워너와 제휴, 밀워키 현지 공장서 양방향 디지털TV용 신형 디지털 셋톱박스를 테스트 중이다.
한편 FCC의 이번 케이블카드 분리 조치는 디지털 케이블TV 가입자에 우선 적용된다. 따라서 내달 1일부터 미국 케이블TV 방송사는 신규 가입자에게 통합형 셋톱박스를 제공할 수 없다. 현재 미국 케이블TV 가입자 6500만명으로 이 가운데 3300만명이 디지털 케이블TV 가입자다.
류경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