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코리아가 마흔 살이 됐다. 1967년 우리나라에 최초의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서 첫발을 내디딘 뒤 두 번의 오일 쇼크, 민주화 항쟁,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 국내외 정치·사회의 큰 변화를 함께 겪으며 성장해왔다.
길현창 사장(50)이 모토로라에서 보낸 23년은 말그대로 변화의 연속이었다. 한국이 모토로라의 주력 사업이었던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면서 협력자에서 경쟁자로 위상이 변했다. 수익성이 악화돼 접은 사업도 부지기수다. 20여년간 재무 업무를 맡았던 그가 분사·매각·인수시킨 사업도 꽤 된다.
길 사장은 “변화무쌍한 시절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공장을 대만 ASE에 팔고, 인수한 어필텔레콤의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비난도 많이 받았다. 반도체 사업도 결국 분사해 휴대폰 및 무전기 등 통신단말사업으로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팬택 등과의 경쟁 상황이 더 극명하게 드러나 곱지 않은 시각은 더 심해졌다.
“모토로라코리아 식구가 800명이나 됩니다. 이 중 500명은 CDMA 기술과 단말기를 개발해 전 세계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레이저2’의 핵심 디자인도 우리 디자이너들이 만들었습니다. 한국은 모토로라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길 사장은 기자를 만날 때마다 한국에서의 모토로라의 역사와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나라가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외국 기업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국민정서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한국과 미국, 중국의 국경이 없는 비즈니스가 펼쳐지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속지주의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한국에서, 디자인은 유럽에서, 생산은 중국에서 이뤄지는 비즈니스의 구조를 이해해야만 글로벌 기업들이 더 많이 한국에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모토로라는 우리나라에 CDMA 연구소와 모바일 RFID를 연구하는 연구개발(R&D)센터 등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길 사장은 “한국과의 연을 불혹뿐만 아니라 회갑, 고희까지도 이어나가고 싶다”면서 “모토로라가 한국에서 두 배로 성장해 아시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법인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길 사장은 1957년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서울 중앙고·동국대 회계학과 및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