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류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서 우리 영화 관객이 현저히 줄고 있고, 아시아지역에서도 견제가 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대만 등지에서는 한국 드라마의 방영 규제를 강화하는 실정이다.
한류의 아시아지역 탈피를 위해 국내 제작사들이 MIPCOM이나 MIPTV 같은 국제프로그램 견본시장에서 공동제작을 모색하고 있지만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국가 간 공동제작은 마치 국제결혼을 하는 것과 흡사해 시작하기도 어렵고, 성사된다 하더라도 성공적인 작품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갈등, 비용이 발생한다. 물론 성공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대박’이 난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공동제작을 할 만한 전문 인력도 부족하고 성공사례가 미미하다. 그렇더라도 공동제작은 발전시켜야 할 분야다.
이에 앞서 더욱 접근하기 쉬운 대안이 교육용 콘텐츠의 해외 수출이다. 우리나라는 교육과 관련한 미디어 제작 시스템이 매우 성숙돼 있다. 공공기관으로 내가 속해 있는 방송대학TV와 EBS를 비롯해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설기관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의 콘텐츠 제작 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교육 프로그램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문화충돌현상이 심각하지 않다. 어느 나라에서든 수학 방정식이나 과학법칙은 문화나 전통이 다르더라도 내용은 다를 수 없다. 이는 스포츠 콘텐츠와도 흡사하다. 스포츠 역시 종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민족·종교·이념을 초월해 전 세계 사람이 즐긴다.
나는 최근 인도·말레이시아·태국 등을 다녀왔는데 이들 국가에는 예외 없이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인도는 최고의 일류대학인 네루대학과 델리대학을 비롯, 기타 50여개 국립대학에 한국학이 개설돼 있으며 10만명이 넘게 수강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도 영어·중국어·일본어 등을 배우기 위해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듯, 한국어가 필요한 사람에게 이들 실정에 맞는 한국어 습득 프로그램을 개발해 공급한다면 한국어 확산은 물론이고 문화홍보, 콘텐츠 수출 등 일석이조, 삼조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육프로그램은 한번 잘 개발해 놓으면 영화나 드라마보다 오랫동안 활용할 수 있고 ‘원소스 멀티유스’로 부가가치가 높다. 영국 BBC, 미국 PBS, 독일 ZDF, 프랑스 TF1등 국·공영 방송사는 직접 또는 자회사를 통해 많은 교육용 콘텐츠를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나는 지난해 영국 BBC에서 만든 인사관리 기업교육용 프로그램의 메이킹 필름을 본 적이 있는데 제작팀이 굉장히 탄탄했다. 실무전문가와 이 분야를 전공한 프로그램 디렉터, 전공 교수, 교육공학을 전공한 석·박사급 이상 전문 교수설계자, 심리학자, 통계처리 전문가, 작가 등 100여명의 스태프가 철저한 요구조사와 교수설계이론에 근거해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쳐 연구, 개발하고 있었다. 반면에 우리 현실을 짚어보면 첫째, 제작 능력과 환경은 충분하지만 다소 주먹구구식이다. 즉, 교육프로그램 제작에서 가장 기초적인 요구분석(need assessment)이 대부분 생략되고 체계적인 교수설계절차가 간소화돼 진행된다.
둘째, 기획자, 교수설계자, 프로그램 디렉터의 상호 전문성 인정에 인색하고 프로그램 제작 시 분업화와 통합 관리가 결여돼 있다. 셋째, 해당 과목을 전공하거나 전문지식을 갖춘 교육전문 디렉터가 부족하다. 넷째, 인적·물적 투자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프로그램 제작 시 국내용으로만 기획하고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해결해 간다면 우리나라는 교육 분야에서 다시 한번 한류를 이어 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아울러 IT 분야에서 무수히 개발되고 있는 e러닝 플랫폼이나 온라인 학습 시스템 소프트웨어도 국제적 수준으로 개발해 함께 세계 시장을 향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이제는 교육시장이다!
◆한기호 한국방송대학교 디지털미디어센터 기술감독 kihohahn@kno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