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shwkang@kbsi.re.kr
오늘날 과학기기의 개발은 새로운 연구영역 개척 및 세계적인 연구성과 창출에 기여하고 있으며, 연구자들도 첨단 연구개발 활동시 과학기기와 연구활동을 분리해 생각하기 어렵다. 미국 국가과학위원회(NSB)가 2003년 ‘새로운 첨단기기가 새로운 연구 프런티어를 창출하고 기술혁신을 촉진시켰다’고 언급했듯이 독창적인 과학기기의 자체개발은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하고 과학기술 역량을 나타내는 지표이면서 경제발전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일본의 실험기기 제작회사인 시마즈제작소의 다나카 고이치는 질량분석기를 개발해 2002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계 과학기기 시장 규모는 연평균 5∼6%의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과학기기 산업은 산·학·연 및 학제간 긴밀한 협력 하에만 가능하며, 국가 과학기술 및 지식집약형 산업을 일시에 제고할 수 있는 효과를 갖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기 시장은 세계 흐름과는 달리 제대로 성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기기개발업체 대부분이 영세하다. 국내에는 50여 개의 기기제조업체가 있으나, 대부분 10억원 미만의 자본금을 가진 기업들로 기술개발인력, 투자재원, 마케팅 능력 등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영세기업들이다. 또 제조 판매하는 기기도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기기보다는 범용성 과학기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둘째, 자체적인 기술혁신 능력이 부족하고 전체 시스템의 정비와 핵심 요소기술 개발이 불충분해 외국 기기보다 성능과 품질이 떨어져 분석결과의 신뢰도가 낮기 때문에 적정 수요시장 확보가 곤란한 상태다.
셋째, 국내 연구자들은 국산기기보다는 외산기기를 선호한다. 연구자들 대부분이 해외 유학 시절에 사용했던 외산기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또 국산기기에 대한 홍보가 미흡해 연구자들이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해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은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넷째, 산·학·연 간 기기개발 관련 정보교류가 부족하고 협력체계 구축도 미흡하다. 업계에서는 연구자들의 수요를 반영한 기기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대학과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기술을 산업체로 이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미흡하다.
다섯째, 국산기기 개발 및 관련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지원이 크게 부족하다. 국산기기 자체 개발 분야를 새로운 성장동력의 하나로 인식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국산 기기제조업체를 통해 개발된 각종 연구분석 및 실험용 기기를 국내 연구자들에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 주체별로 역할 분담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더욱 전략적으로 나서서 첨단 분석기술 및 기기 개발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