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만화가가 신작을 일본에서 먼저 발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만화가가 그린 만화를 한국 출판사가 일본 출판사를 통해 역수입하는 경우도 덩달아 늘고 있다. 최근 국내 만화잡지 발행이 급감하자 신작 발표 공간부족을 겪고 있는 한국만화가들이 창작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가는 데 따른 현상이다.<표 참조>
현재 일본에서는 ‘신암행어사’의 양경일, 윤인완 만화가와 ‘흑신’의 박성우 만화가를 비롯한 유현, 이유정, 박무직, 이태행 등의 만화가들이 활동 중이다. 이 중 ‘신 암행어사’는 일본 3대 메이저 만화출판사 중 하나인 ‘쇼가쿠칸(小學館)’의 월간지 ‘선데이GX’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으로 일본 내에서만 150만 권이 팔렸다. ‘신암행어사’의 출판권은 쇼가쿠칸이 소유, 국내에서 출판되는 ‘신암행어사’는 대원씨아이가 쇼가쿠칸에 판권료를 주고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다. 대원씨아이 측은 신암행어사의 한국 내 발행부수가 권당 5만권으로 현재 15권까지 발행, 75만부 가량 발행됐다고 밝혔다.
현재 잡지 연재 중인 박무직 만화가 등의 장편이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면 ‘한국 만화가가 그린 일본 만화’의 수입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만화가 일 창작환경에 의존=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교수는 “일본 내에서 발행부수가 10만∼30만부인 중소형 잡지 출간이 늘고 있어 만화가 수요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 규모의 잡지라 해도 발행부수가 국내 만화잡지의 5∼10배 이상이므로 더 많은 독자와 접촉할 수 있다는 게 만화가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인이다. 여기에 국적보다는 실력을 중시하는 일본 만화출판사의 풍조가 정착하면서 데뷔한 지 5∼10년차가 되는 한국만화가를 끌어당기고 있다. 박 교수는 “우리와 일본의 만화 문법, 연출방식 등이 비슷해 한국 만화가가 현지에서 적응하기에 유리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안정적인 연재는 만화가들에게는 수익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라는 점 역시 일본진출의 요인이다. 만화산업종사자들은 “일본 만화출판사가 오랜 시간 축적한 기획력과 관리 능력도 한국 만화가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요소”라고 풀이했다.
◇순기능과 역기능 공존=만화가 개인에게 일본 진출은 안정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소 침체됐다고는 하지만 일본 만화시장은 4조5000억원으로 4425억원의 한국 시장의 10배를 넘는 규모다. 이처럼 큰 시장이 형성되다 보니 작품 고료와 만화가 대우면에서 한국보다는 낫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만화가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돼 만화가가 수익창구를 다변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반면 ‘역수입’이란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한국만화가의 판권은 일본 출판사가 가질 수 밖에 없어 이들의 작품을 국내에서 출간할 때 수입 판권료 지불은 불가피하다.
국내 만화출판사 관계자들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히트작이 늘면 판권료도 증가하는 건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 암행어사 등 성공, 향후 진출 늘 듯=2004년 이후 ‘신암행어사’와 ‘흑신’의 성공과 점점 나빠지는 국내 만화 출판 환경으로 인해 국내 만화가의 일본 진출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프리랜서 만화 번역가 겸 편집자로 활동 중인 장종철 씨는 “현재 10명 남짓한 기성 만화가가 일본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인하 교수는 “아쉽지만 국내 창작 여건이 나쁜 상황에서 작가들이 더 나은 여건을 찾아가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수운기자@전자신문, p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