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IT코리아 2.0](2부)M2M을 향해⑩가상현실 규제

 “앞으로 ‘세컨드라이프’로 대표되는 가상세계 비즈니스가 눈에 띄게 성장할 것이다. 오는 2011년 10억명 이상이 가상세계 아바타를 갖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 박사가 최근 제주를 찾아 디지털시대에 생활상(라이프 스타일)이 어떻게 변할지를 풀어놓았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휴대용 컴퓨터’로 불렸고,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초대 총재를 맡을 만큼 깊이를 인정받는 경제·미래학자의 혜안에도 ‘가상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세컨드라이프’는 당신의 상상대로 두 번째 인생을 만들어보라며 네티즌을 유혹한다. 그 3차원 가상세계에 합류한 네티즌이 720만명을 넘어서면서 힐러리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외치는 공간을 만드는가 하면, 최근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는 가상의 섬을 분양받아 바람둥이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가상의 플레이보이 섬에 들러 각종 성인용품이나 옷을 산 뒤 아바타는 물론이고 현실 세계의 자신까지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가상현실과 현실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BBC, 로이터, 마이크로소프트, 아디다스, 인텔, 코카콜라, IBM 등 굴지의 기업들이 ‘세컨드라이프’에 영토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가상 부동산 투자가 잇따르면서 지난해 말 ‘세컨드라이프’의 현실 시장규모가 6000만달러에 달했고, 올해 5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새처럼 날아다닐 수 있고, 육감적인 아바타들이 놀고 있는 곳으로 순간이동(teleport)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람도 사귀고 쇼핑을 하다보니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이용환 정통부 미래전략기획팀장은 ‘세컨드라이프’를 통해 충족할 수 있는 가상의 욕구만족, 재미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가상화폐인 270린든달러 정도를 현실화폐인 1달러와 바꿀 수 있는 통화체계에 주목했다.

 “당장 ‘세컨드라이프’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한 세금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또 가상현실을 통한 폭력, 매춘, 사기 등을 어떻게 규제할지도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 팀장의 예측처럼 그야말로 ‘두 번째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방임에 대한 책임 기준을 마련할 때다. 그러나 정부는 ‘당장 규제 여부를 판단할 만한 사례가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대응할 것’이라는 원론적 방향만을 재확인하는 단계다.

 서병조 정통부 정보보호기획단장은 이와 관련, “지금은 정보통신망에 있는 모든 정보로 인해 빚어지는 이용자 권리침해를 보호한다는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상법, 형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정부 조직적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상철 한국정보사회진흥원 u서비스지원단장은 “비규제, 개방이라는 인터넷 기본정신에 비춰 정부가 할 일이 점점 없어질 것”이라며 “다만 분쟁이나 부작용이 생겼을 때 네티즌의 자율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규제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메가트렌드-상상이 현실화하는 미래의 삶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몽마르트의 아파트 침상에서 눈을 뜬 카트리느는 아침식사 후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디자인 회사로 출근한다. 정오에는 유명 레스토랑 푸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에스프레소 커피와 함께 오후 일을 계속한다. 퇴근 후에는 아우디 자동차로 파리 근교의 아디다스 매장으로 달려가 주말 싸이클링을 위한 스포츠웨어를 고른다. 밤에는 개선문 근처의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며 즐긴 후, 집으로 돌아와 나직한 재즈음악과 더불어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는..로그아웃! 모니터 화면의 닫힘과 함께 카트리느는 캐나다 궤벡은행의 평사원으로 되돌아온다.

 2003년에 시작된 3차원 가상세계로서 세계 각국에서 온 7만여 명의 주민들로 이뤄진 ‘세컨드라이프’라는 온라인사이트를 방문한 적이 있는가? 누구나 소망하는 현재의 내가 아닌 더 나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이 사이트가 무서운 속도로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쳇바퀴 같은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한 여성 은행원이 자기가 꿈꿔온 ‘파리의 디자이너’를 세컨드라이프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물론 이때의 세컨드라이프란 은퇴 이후의 노년기 삶이 아니라 사이버공간 상의 가상현실을 의미한다.

 온라인 가상세계는 현실세계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흡사해지고 있다. 현실의 생활환경이나 사유방식과 더불어 초창기에는 수용하지 못하던 감성적 요소까지 가상세계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상세계에서 접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더 친숙하고 가까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하는 가족들보다 싸이월드의 일촌이 더 친근히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학자 쟝 보드리야르는 기시감(旣視感)의 일환인 ‘데자뷰’ 현상을 두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초현실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디즈니랜드가 그 전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실제가 아닌 놀이공원의 ‘개척의 나라’ ‘모험의 나라’ ‘환상의 나라’ 등과 같은 테마파크를 전전하며 관람객은 열광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초현실이 우리 생활에 보다 널리 일상화할 것으로 전망하는 그는 ‘하지만 진실이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걱정스럽게 되묻는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사회에서도 이러한 가상세계들이 크나큰 위력을 발하기 시작하고 있다. 온라인게임에 몰두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게임 안에서 펼쳐지는 세상은 투쟁만 난무하는 각축적 세계가 아니라 정서적·감정적 교류가 함께하는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가공의 세계다. 양극화 등으로 척박함이 더해가는 험난한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이기에 가상현실의 극치인 온라인게임 세계에 보다 몰두하는지 모른다.

 세컨드라이프가 곧 한국에 본격적 상륙할 것이라고 한다. 세컨드라이프 안에서 한국인들이 만들어갈 세계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그러나 ‘텔레그람 온라인’ 대표 마이클 클라인이 “이제는 가상현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듯, 우리는 유토피아적 가상현실로부터 한국인이 추구하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창조적 정보화 전략의 아이디어를 색출할 수 있으리라 본다. muncho@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