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마약·폭력조직·테러분자가 휴대폰과 인터넷을 악용해 범죄를 모의, 실행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엿듣거나 송수신을 차단할 합법적 틀이 없다. 대통령 승인이나 법원 허가를 받더라도 감청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4100만명이 휴대폰을 쓰는 지금, 위치정보서비스(GPS)를 포함한 통신사실확인(감청) 자료를 국가 수사기관이 제공받는 것은 국민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휴대폰 감청 합법화를 위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본회의 상정·의결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대에 맞닥뜨린 법사위 소속 일부 의원이 주춤거리자 정부 관계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번 임시 국회 내 의결을 꾀할 태세여서 주목된다.
◇왜 감청하려는가= “유선전화는 그냥 ‘선을 따면’ 되지만, 휴대폰은 ‘교환기 안에 감청장비를 넣고 3자 통화형식’을 취해야만 가능하다. 지금으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한 수사기관은 최근 불법 해외 송금, 테러자금 지원 협의가 있는 외국인 A가 휴대폰으로 국내외 연계조직과 불법 자금을 모아 송금할 방법을 모의한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나 관련 금융정보 접근이 원천 차단된데다 휴대폰 감청이 불가능해 협의를 밝혀내기 어려운 실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2005년 10월에는 주한 미군 B가 군사우편을 이용해 마약류를 들여와 팔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나 역시 휴대폰 감청을 하지 못해 국내에 체류하던 대규모 외국인 마약 공급조직 전원을 검거하지 못했다. 범죄수법은 이동형(휴대폰)인데 검거 수단은 고정형(유선전화)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휴대폰 이용자 열 명 가운데 일곱 이상의 동의가 없다는 게 문제다. 특히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아직은 ‘피의자’ 신분인 일반인의 휴대폰을 감청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인권 침해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대안은 있는가= 정부 관계자는 “감청 대상 범죄가 정해져 있는데다 법원 허락이 있어야 하고, 휴대폰 감청 장비를 갖추고 수사기관에 협조할 의무를 질 전기통신사업자들이 제3자로서 감청 오·남용 감시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가기관이나 통신회사 등이 불법 감청한 사실을 신고하는 이에게 포상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오·남용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정부는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를 통해 감청기술 표준 제정 과정에서 오·남용 방지를 위한 기술적 요구사항, 감청설비 구축에 필요한 기준을 공개적으로 논의·검토함으로써 불법감청소지를 줄이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에도 불구하고 감청설비 오·남용을 막을 세부 사항·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을 해소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전망이다. 또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는 감청대상 범죄에서 △뇌물수수·특가(알선수재)·뇌물공여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등은 제외하자고 주장하는 등 부수적 변수가 고개를 들면서 시민·사회단체의 불신을 가중시킬 전망이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표>감청 관련 제도 비교
구분 한국 외국
안보감청 허가 법원(대통령은 승인) 소속 장관(영국·독일·호주)
안보감청기간 4개월 6개월∼1년(호주·대만·미국)
긴급통신 제한조치 36시간 48시간∼5일(영국·독일·호주)
감청사실의 당사자 통지 내국인에게 사후통지 당사자 통지제도 없음(영국·프랑스·호주)
불법감청 처벌 10년 이하 징역 2∼5년 이하 징역(영국·독일·프랑스·미국)
통화기록보관 이동·국제전화=1년, 시내외전화=6개월, 인터넷로그기록=3개월 1년(프랑스·스페인·벨기에·덴마크·미국), 3년(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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