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녹봉(祿俸)

 옛 벼슬아치들은 1년이나 6개월, 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첫 음력 달마다 쌀·보리·돈 따위를 봉급으로 받았는데, 이를 ‘녹봉(祿俸)’이라고 불렀다. 나라가 벼슬아치에게 녹봉을 주려면 국고(國庫)를 채워야 했고, 그 창고 안에 백성의 고혈이 맺혔다. 세월이 흘러 상황이 바뀌었나? 아니, 지금도 국민 고혈로 국고를 채운다. 국민이 공무원을 고용해 나랏일을 맡기는 셈이다. 따라서 공무원 가슴에 ‘국민을 섬기는 마음’을 새겨야 하고, ‘국민 혈세를 소중히 쓰는 자세’를 굳게 다지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는 말이 있다. ‘재덕이나 공로가 없어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한 채 녹봉을 받아먹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질타할 때도 쓴다.

나랏일이라는 게 국민에 맞닿아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국민을 섬기며 늘 재덕과 공로를 쌓으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덕을 쌓기는커녕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못된 마음가짐을 가진 공무원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류다. 정보통신부가 최근 정보통신정책심의위원회를 연 결과를 보도자료에 담아낸 적이 있는데, 달랑 종이 한 장인 데다 특별한 배경설명도 없었다. 그래서 실무책임자(팀장)에게 전화했는데, 자리에 없었는지 실무자 A가 받았다. 정책심의결과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데, A는 짜증스런 말투로 “별것 아닌데, 아침부터 왜들 호들갑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별것 아니니까 호들갑 떨지 말라고? 그 정책심의결과는 우리나라 굴지의 이동통신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를 덜어주는 것이었다. 엄연히 나랏일이고 국민에 영향이 미치게 마련이다.

 요즘 중앙행정기관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기자와 공무원이 직접 만나는 것을 통제할 예정인데, A는 벌써부터 “홍보팀을 통하라”는 지침에 충실하다. 앞으로 A와 점점 더 멀어질 텐데, 지켜보는 것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리라. 국민 고혈이 모여 A의 월급봉투를 채우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많은 ‘A’들이 출현할 것이다. 그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혈세를 낭비하지나 않는지, 국민에 무례하지나 않은지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기자의 몫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이은용차장·정책팀@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