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는 8년차 개발자가 쓴 ‘내가 IT를 그만 둔 이유’라는 글이 큰 반향을 낳고 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개발자의 길에 들어선 그는 밤낮없는 야근 문화 때문에 몸과 마음만 망가졌다고 한탄하며, IT를 떠난 요즘 아이들과 놀아주는 등 8년 만에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 글을 본 비슷한 처지의 많은 개발자가 공감하는 댓글을 잇달아 올렸다. 2년 전에도 열악한 개발자 환경을 하소연한 ‘영재들아, 제발 IT로 오지마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소프트웨어(SW)개발자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토론회를 개최하며 열악한 삶을 호소하고 있지만, 국내 SW환경이 악순환 고리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관계로 해법이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척박한 SW환경을 타파하려는 의미 있는 실험이 벌어지고 있어 시선을 모은다. 필라넷 DB사업부. 10명의 SW엔지니어로 구성된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회사’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사정이 어떻기에 하고 속사정을 들어보니 모든 게 ‘파격’이다. 우선 이들은 고객 만족보다 직원 만족을 더 중시한다. 직원이 먼저 만족하고 행복해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SW업계에서 쉰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아니,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이들은 ‘쉬면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눈치 안 보고 휴가도 아무때나 간다. 결혼기념일 같은 집안 경조사에는 만사 제쳐 놓고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고, 마냥 노는 건 아니다. 일에 대한 성과는 확실히 챙긴다. ‘일할 때는 죽을 정도로 열심히 미쳐 일하되, 쉴 때는 확실히 쉬자’는 게 이들의 모토다.
이 팀을 만든 정원혁 상무는 ‘두 나무꾼 이야기’를 들려주며 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무꾼 두 사람이 도끼 들고 산으로 나무하러 갔습니다. 그중 한 명은 욕심 많고 남에게 지고 못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50분 일하고 10분 쉬며 일했습니다. 누가 더 많은 나무를 했을까요? 놀랍게도 쉬면서 일한 나무꾼이었습니다. 쉬지도 않고 일한 나무꾼이 그 비결을 물으니 “10분을 쉬는 사이 나는 도끼 날을 갈았네”라고 대답했답니다. 제대로 충분히 쉬어야 ‘날카로운 도끼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것에도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보통 SW 기업은 개발자를 100% 가동하기 위해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수익이 없으면 프로젝트를 아예 맡지 않는다. 많이 벌되 수익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러기에 살아남으려면 절대 우위를 갖는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필라넷DB사업부에는 한국MS가 인정한 10명의 기술 전문가(Technet Honor) 중 4명이나 근무하고 있다. 지난 2005년 2월 이 사업부가 출범했을 때 주위에서는 “꿈과 같은 회사”라며 “1년도 못 가 망할 것”이라고 수군댔다. 하지만 올해 3년째 항해하고 있다. 물론 쾌속항진하는 건 아니다. 사업 첫해 다행히 흑자를 냈지만 작년에는 적자로 고전했다. 올해도 목표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 상무는 “정 안 되면 문 닫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실험’은 꼭 필요하다”며 태연한 표정이다. 척박한 우리 SW환경을 돌아볼 때 필라넷 DB사업부의 이 같은 문화는 ‘실험’이자 ‘도발’에 가깝다. 하지만 왠지 유쾌하고 청량하다. 이런 도발이 SW업계 여기저기서 벌어졌으면 좋겠다.
◆방은주 논설위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