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전자금융거래법]팔짱 낀 기업들…내달 `조사 대란`오나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금융사고 발생시 처리 과정

 ‘비용을 들여 자금 수수 방식을 개선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과징금을 내는 범법 기업이 될 것인가.’

 7월 1일부로 본격 시행되는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을 두고 기업들의 속병이 깊다. 전금법 시행에 따른 오프라인 기업의 책임은 표면적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전금법은 소비자와 금융기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전자금융업무를 제공하는 기업에 대한 허가·등록 및 감독에 관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관심사가 지급대행업체(PG, 선불카드업체 등)의 등록이나 온라인상거래(e마켓플레이스) 업체들의 책임과 의무에 쏠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고 책임을 규명하는 데 가장 기본사항인 ‘출금 고객 동의’는 오프라인 기업의 몫이다. 수취인(기업)이야말로 전금법 시행에 따라 무거운 책임을 부과받은 주체라는 의미다. 그러나 법 시행 6개월이 지나는 현재까지 이에 대한 논의는 ‘논외’로 취급, 수면 아래 숨어있었다.

 ◇공인인증 아니면 ‘서면’만 용인=자금이체의 출금동의 방법을 규정한 전금법 시행령 제10조 2항에 따라 기업들은 고객으로부터 서면 동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고객이 공인인증서를 통해 인터넷뱅킹을 하면 문제없다. 그러나 계좌이체나 카드결제를 요구하는 신규 고객이나 기존 고객이 이체로 방식을 변경하거나 계좌를 변경할 때 기업은 소비자로부터 직접 서명을 받고, 이를 보관해야할 의무가 있다. 만일 서면 동의서를 받지 않고 거래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은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전금법 9조 1항). 더군다나 대표적인 전자거래 업체인 금융결제원(금결원)은 지난 3월 약관 개정을 통해 앞으로 거래 업체의 실수로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시 자금관리서비스(CMS)를 중단할 수 있게 했다. 기업은 사실상 자금 이체 중단이라는 직격탄을 맞는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

 ◇기업 ‘유연’ 적용 요구, 정부 ‘법대로’=법의 취지는 물론 녹취, 팩스 등의 행위가 법적 효력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업의 ‘고객 서면 동의’ 적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업들은 ‘현실 고려’를 요구한다. 이미 콜센터를 통한 전화 영업 및 정보 수정은 물론, 팩스(신분증 및 통장 사본)를 통한 고객 출금동의가 일반화돼있는 상황이라는 것.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따르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다는 이유다. 한 기업체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은행을 방문해 계좌이체에 동의를 해주면 좋지만 불편해 할 것이 뻔하고, 결국 영업 사원 등을 통해 일일이 찾아가야 하는데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강경한 입장이다. 최근 급증하는 전화를 통한 보이스 피싱 등의 사례에도 드러나듯, 본인 동의에 대한 엄격한 절차를 준수해야한다는 반응이다. 신상훈 재정경제부 담당 사무관은 “자기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니만큼, 출금에 관한 사항은 수취인(기업)과 지급인(소비자)간의 서면 확인 절차가 필수적이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업체 무방비, 7월 조사 대란 오나=알고도 6개월이 지났다. 기업 대다수는 여전히 다른 기업의 대응 수준을 보면서 눈치만 살피고 있다. 전금법 시행을 계기로 영업 프로세스까지 변화를 꾀하고 있는 중견 기업 관계자는 “비용이 들더라도 법을 준수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사고를 미리 방지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정부나 금융당국이 이번 법을 형평성 있게 적용해야하는 것은 물론 기업 길들이기의 다른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일벌백계를 위해 7월에 대표적인 기업을 중심으로 직권조사를 할 것이라는 얘기가 떠돈다.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사실상 대부분 기업들이 문제가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기업은 정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결원 `CMS 약관변경` 논란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이 자금관리서비스(CMS) 시장도 뒤흔들고 있다. 전금법 시행이 CMS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CMS의 핵심 서비스인 ‘계좌이체’ 서비스 전체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는 금융결제원(금결원)의 약관 변경 때문이다.

전금법은 금융사고 발생시 그 규명 책임을 금융기관에 지우고 있다(2주 이내 책임 규명).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금결원은 제1 금융권과 금융공동망을 연계, 자금 이체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금법 시행에 따라 금결원은 지난 3월 CMS 약관을 변경했다. 변경된 약관에는 사고 발생시 수취인(CMS 이용 기업)이 10일 이내 사고와 관련한 자료 제출을 명시했다. 이는 사고 발생시 금융기관(금결원)이 금융감독위원회에 15일 내 관련 소명 자료를 제출해야한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10일간의 말미를 통해 기업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금융위원회에 보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조항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기업들은 “10일 이내 제출 조항이야말로 금결원이 그 책임을 해당 기업에 전가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금결원)은 무슨 책임을 지는 것이냐?”라고 주장한다. 대규모 고객을 확보한 기업 관계자는 “법에는 모든 금융 사고에 대한 책임을 금융기관이 지도록 명시돼 있지만, 금결원이 약관을 앞세워 해당 기업이 10일 이내에 소명을 요구함으로써 결국 책임은 금결원이 아닌 기업이 지는 것과 매한가지”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한 금결원의 해석은 다르다. 금결원은 원칙적으로 ‘금융 중개업자’인만큼 최종 책임은 해당 기업에 있다는 것.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보험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보상할 순 있지만 향후 구상권을 통해 문제 발생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금결원 한 관계자는 “금융 사고의 경우 문제 발생 기업이 최종 책임지는 것이 맞다”라며 “금결원은 결제중계기관으로써 완벽한 금융 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논란 거리는 수정 CMS 약관에 ‘기업 책임이 밝혀질 경우 CMS 거래를 중지할 수 있다’는 대목이다. 기업은 이 조항이야말로 금융권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기업 관계자는 “전 은행을 포괄하는 CMS를 제공할 수 있는 다른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방식이든 기업이 입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만일의 하나 이 법이 의도적인 기업 음해, 또는 표적수사의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감을 비췄다.



◆소비자 의무 인식 부재

지난 1월 1일 시행된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은 온라인 금융 거래, 즉 비대면 거래와 관련한 하나의 법이지만 향후 몰고올 시장 변화는 그 이상이다. 특히, 전금법이 전자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법률 관계(해킹 등 사고시 책임 문제)에서 민법·상법 등 다른 거래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인 만큼 기존 어떤 법안보다 국내 금융 시장에 끼치는 파급 효과가 막강하다.

알려진 대로 전금법 시행 6개 월 후 전자금융업체의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전자금융거래를 원하는 업체는 금융감독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전자금융거래와 관련한 모든 업체는 신청일 직전 사업연도 말 또는 분기 말 부채비율이 200% 이하, 신용카드 등 포괄적 PG사업을 위해선 최소 50억원의 자본금을 갖추도록 했다. 사업을 시작한 후에도 최소 2∼3일치 결제금액의 일정액을 예치해야 하는 조항도 넣었다.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유예기간인 이달 말까진 40여개 업체가 등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 보험, 상호저축 등 기존 금융회사는 사업 목적에 ‘전자금융업’을 추가하고 있다.

문제는 오히려 소비자 의무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전금법이 들고나온 ‘전가의 보도’는 비대면 거래시 본인 동의를 ‘서면’이나 ‘공인인증’으로 강제했다는 점이다. 전화 녹취, 팩스 전송 등으로 인한 동의가 소비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행 6개월이 지났음에도 이를 제대로 인지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기업이 서면 동의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도 적지 않은 이유로 작용하지만 소비자 스스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황재복(가명)씨는 “한 달 전 자동차 계약을 갱신했는데 서면계약에 대한 설명 없이 평소대로 전화 녹취만을 했다”며 “녹취가 법적 효력이 없다면 계약 전 업체가 이를 제대로 설명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은행통장, 현금카드, 보안카드, 공인인증서 등 전자금융 접근 매체의 양도·양수 행위도 엄격히 처벌된다. 속칭 명의를 빌려 만드는 ‘대포통장’ ‘대포폰’ 거래에서 암묵적으로 명의를 빌려준 소비자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대포통장 거래에 대한 입증이 힘들어 그간 처벌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전금법 시행으로 형사 처벌이 쉬워졌다.

명의 신탁 혐의로 입건되는 사례는 이미 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위반자가 나올 정도다. 경찰청은 내달부터 명의 신탁 등 전금법 위반을 본격 단속하기로 해 위반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경찰청은 명의 신탁이 보이스 피싱 등 2차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으로 전금법을 엄격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탐사기획팀=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etnews.co.kr, 김규태·한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