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미래모임]벤처 투자의 패러다임 변화

벤처투자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제로 열린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정성인 프리미어벤처파트너스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벤처투자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제로 열린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정성인 프리미어벤처파트너스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유한회사(LLC)형 펀드가 출현하고 펀드 규모가 대형화되는 등 벤처 투자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동종·이종 업계간 인수합병(M&A)도 빈번해지고 있다. 2002년 벤처캐피털의 자금 회수 비율에서 M&A는 5.4%에 불과했으나 올 연말에는 이 비중이 2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같은 벤처 투자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벤처기업도 유연한 사고방식과 철저한 사업준비로 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본지가 주관하는 정보통신미래모임(회장 정태명·성균관대 교수)은 지난달 27일 논현동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정성인 프리미어벤처파트너스 대표이사를 초청, ‘벤처 투자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제로 6월 정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산·학·연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해 ‘벤처 버블’이 사라진 이후 급변하고 있는 벤처 투자환경을 조망하고, 벤처캐피털과 벤처기업의 바람직한 공생 전략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특히 우리나라 벤처 역사의 산증인인 오명 건국대 총장(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도 자리를 함께 해 벤처기업의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벤처캐피털 역할을 제시, 참석자들로부터 갈채를 받기도 했다.

 ◇변화하는 벤처 투자=벤처캐피털을 대표해 주제 발표자로 나선 정성인 프리미어벤처파트너스 대표는 “벤처캐피털이 하나의 금융산업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LLC형 펀드, 투자규모 대형화, 초기기업 투자 비중 축소, 투자업종 다변화, M&A 증가 등 다양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M&A 증가는 국내 벤처캐피털 환경의 선진화 추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자금 회수방안에는 M&A와 주식상장(IPO)이 있는데 M&A가 수익률은 물론, 이후 시너지를 고려할 때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70% 이상이 M&A를 통해 자금을 회수한다. 정 대표는 “2002년 우리나라 자금 회수 비중 가운데 M&A가 5.4%를 차지했으나 지난해는 13.9%까지 늘었다”며 “이런 추세라면 연말에는 20%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급변하는 벤처 투자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벤처캐피털과 벤처기업의 관계도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벤처캐피털은 벤처기업의 조력자=오명 총장은 “중소기업 육성 정책과 벤처기업 육성 정책은 구분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벤처기업은 벤처캐피털의 지원 아래 철저한 시장 논리, 자본 논리에 따라 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벤처 CEO는 CEO 자리에 연연하기보다는 유연한 사고방식은 물론 창업과 M&A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고방식이, 벤처캐피털은 이사회에 참석하고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등 투자한 기업의 주인으로서 권한과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며 의견을 피력했다.

 ◇적정한 평가모델·투자시스템 필요=현행 벤처캐피털의 투자시스템 및 운용 방식에 대해서는 참석자 대부분이 개선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박지영 컴투스 사장은 지난 경험을 예로 들어 “국내 벤처캐피털은 3∼4년간 펀드를 운영해도 투자 기업의 재무·경영 상황을 모르지만 미국은 투자와 함께 경영에 깊이 관여하고, 재무·투자상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는 의사결정에도 참여한다”며 “투명성 제고나 시스템을 체계화하는데 미국식 운용 방식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병초 한국외국어대학교수가 “기업 초기에 자금을 한 번에 투자하기보다는 성장 단계별로 나눠 투자하는 체계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장세탁 한국경쟁력연구원 파트너도 “현행 투자시스템은 상당 부분 왜곡돼 있다”며 “벤처캐피털 외에 엔젤투자가가 개입해 기업의 비즈니스 플랜 수립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은 벤처캐피털로부터 지원받기 전에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엔젤투자가들이 시제품 개발 및 비즈니스 모델 정립에 힘을 보태준다. 따라서 기업 초기부터 명확한 비즈니스 플랜을 갖고 벤처 자금을 유치, 사업에 매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정성인 프리미어벤처파트너스 대표이사는 “일정 부분 공감한다”면서도 “잘 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고 말해 벤처기업과 VC간 첨예한 견해차를 보여줬다. 그는 “정부 및 업계 차원에서 투자 프로세스와 의사결정 시스템에 원칙을 정해 시행하고 있다”며 “LLC의 경우 펀드 운영자금을 은행에 위탁하고 벤처캐피털은 투자 의사결정만 내려 자금 집행에 투명성을 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

주제발표:정성인 프리미어벤처파트너스 대표이사

제목:벤처투자의 패러다임 변화

 벤처캐피털은 투자가와 기업 사이에서 ‘투자’라는 금융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이를 다시 투자자에 돌려주는 일종의 에이전트를 말한다. 소규모 시드머니의 성격이 강했던 벤처캐피털.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자산운용의 새로운 수단이 되고 있다.

 단적으로 벤처캐피탈의 조직형태가 바뀌고 있다. 2005년 프리미어벤처파트너스를 시작으로 이노폴리스파트너스도 LLC형 펀드를 결성했다. 창투사형 펀드가 대부분이던 VC 시장에 LLC형 펀드가 가세한 것이다. 창투사형 펀드는 주주와 조합원간 이해가 상충될 소지가 높은 반면, LLC형 펀드는 투자기간 펀드 하나만 운영하기 때문에 지주와 조합원, 조합원간 불협화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투자규모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창투 조합의 최소 규모가 20억원으로 소액 펀드가 여러 개 만들어졌으나 최근에는 최소 50억원으로 배 이상 늘었다. 최대 1560억원 펀드까지 생겼을 정도다. 특히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2∼5개사 공동투자가 일반화되다 보니 프로젝트 단위도 커지고 있다.

또, 초기기업 투자 비중이 축소되고 중견기업으로 투자가 늘고 있다. 3년 이하 신규기업에 투자하는 비중이 2001년 70%를 넘었으나 지난해는 30%로 급감했다. 창업 열기가 식고 IT 투자 비중이 줄자, 자연스럽게 초기기업 투자 비중이 감소한 것이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 모기업이 신규 회사보다는 기존 기업의 신규 사업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업종도 다양화되고 있다. 2001년 정보통신 업종에 투자하는 비중이 전체의 57%였으나 지난해에는 40% 이하까지 떨어졌다. IT업종은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단계적으로 비중을 늘려갈 수 있기 때문에 좋은 투자대상이 될 수 있지만, 산업 침체로 인해 2∼3년 전부터 제조, 헬스케어, 교육서비스 등에 선투자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그리고, 회수전략이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은 전체 투자의 80%가 M&A를 통해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10%대를 넘었다. 그 역시 자본시장을 편법으로 활용한 백도어 리스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M&A는 벤처캐피털 누구나 늘려가야 할 회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국제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STIC이 중동계를, 인터베스트가 싱가포르, 엠벤처가 대만으로부터 해외 자금을 조달한 데 이어, 인텔, DFJ, 히라키 등 해외 투자가도 국내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이제 벤처캐피털은 단순히 벤처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툴이 아니다. PEF로서 M&A를 주도하는 등 성장기업에 대한 새로운 금융방식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패널발표:박지영 컴투스 사장

제목:한국 VC vs. 해외 VC

 1998년 설립된 컴투스는 2000년 엠벤처와 KTB 등 국내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 이어 2005년에는 미국 월든과 스톰벤처스로부터 80억원을 투자받았다. 2000년과 2005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와 해외 벤처캐피털 자금지원 방식에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은 투자 결정을 한 후 회사 운영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결과 보고만 하면 된다. 따라서 3∼4년간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내용을 잘 모르고, 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금새 불신으로 연결된다. 이에 비해 미국 벤처캐피털은 이사회 보드 멤버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분기별로 이사회도 반드시 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도 나름의 보고체계를 갖추고, 의사결정의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이사회에 참석하더라도 의사결정을 할 정도의 권한이 없다는 점은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의 또다른 문제다. 해외 벤처캐피털은 파트너급이 이사회 보드 멤버가 되는데, 경험을 바탕으로 통찰력이 뛰어나고 직접적인 의사결정 권한도 갖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은 IPO를 하기 전까지는 IPO만이 결론인 것처럼 유도하다가, 이것이 실패하면 매각으로 전략을 급선회한다. 경영진은 당연히 혼란스럽다. 외국 벤처캐피털이 처음부터 여러 옵션을 함께 제시하면서 지속적인 파트너가 되는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벤처캐피털도 투자와 함께 경영 상황에 깊이 관여하고, 중요한 재무·투자상 의사결정에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

패널발표: 김병초 한국외국어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주제:바람직한 벤처 생태계

 근래 들어 해외투자, 가치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투자의 판단 기준은 자금·기술·경영이다. 이것은 벤처기업의 업종이나 시기에 따라 틀리다. 나름의 성장 사이클이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각 기업의 성장 사이클을 주시하며 자금 투자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

 초기기업 투자 비중이 축소되고 있는 것은 벤처캐피털들이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본다. 매출 발생 시점에 투자한다는 것인데, 이는 벤처캐피털의 기본 성격에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재는 자금을 한 번에 투자하지만, 이보다는 초기·중기·말기 등 단계별로 나눠 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기간별·종류별 배수체계도 확립돼야 한다. 벤처 투자 결정과정도 보다 신속해져야 한다.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 보통 3개월, 6개월이 걸리곤 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적기’를 놓칠 수 있다.

 벤처캐피털의 현 시스템을 보면, 기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벤처캐피털들도 엔지니어 영입에 나서고 있으나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경영자 얼굴 보고 판단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초기기업에 들어가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전문성은 절대 필요하다.

 경영 측면에서는 벤처캐피털들이 벤처 CEO의 독주를 제어해 줄 필요가 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 이에 대한 관리감독은 필요하다. 또 국내 중소기업이 전략없이 경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략적인 측면을 체계화하는 형태로 보완돼야 한다. 낙후된 재무기법도 보강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