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IT코리아 2.0] "新 IT가치사슬 연결하자"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인 임인배 의원(한나라당)은 “언제나 시대정신이 있었는데, 일제시대에는 ‘독립’이었고 60년대에는 ‘근대화’였으며 지금은 ‘대한민국 선진화’”라며 “부가가치가 높은 IT·생명공학기술(BT)·나노기술(NT) 등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IT를 비롯한 기술진흥을 통해 선진국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정부도 줄기차게 이 같은 노력을 전개해왔다. 정부는 지난 10년여 동안 IT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했고 ‘선택과 집중’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성과가 있었다. 디지털 기회 지수가 세계 1등이고 2만여개 IT중소기업이 지난해에만 148억달러어치를 수출했다. 그런데 기존 진흥정책의 ‘한계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궁극적으로 ‘IT 가치사슬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 이상 정부가 수요를 창출해줄 수 없는 시대다.”

 김창곤 한국정보사회진흥원장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자태그/유비쿼터스센서네트워크(RFID/USN) 선도기업 7곳을 돌아보고 내린 결론이다. 세계 태그(tag) 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하는 에일리언(Alien)테크놀로지를 비롯한 사비(Savi)테크놀로지, 엔엑스피(NXP)반도체 등을 방문해 ‘송도 u-IT 클러스터’ 추진에 따른 협력방안을 꾀하고 돌아온 것.

 우리나라 IT벤처기업은 그동안 정부에 수요를 창출해달라고 요구하고 정부는 이를 위해 예산을 들여 시범사업을 주도해 터를 잡아주는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시범사업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업이 정부가 만들어준 시범사업을 사업화·산업화로 끌고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경영 능력이 부족하고 기술역량도 모자라 처음부터 정부에 기대기만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에 ‘비슷한 시범사업을 만들어달라’고 버젓히 요구하는 기업도 나오는 실정이다.

 김창곤 원장은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달랐다”며 “버클리와 스탠퍼드대학 인재를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했고 벤처캐피탈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사업모델과 수익이 창출되는 선순환 구조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 전했다. 인재와 기업으로부터 분출하는 아이디어들이 사업화하고 외부 투자가 이루어지는 생태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벤처기업 생태계는 워낙 기반이 취약하고 체질이 부실해 정부가 민간기업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인력양성 △연구개발 △수요창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구개발인력이 쉽게 창업하고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는 얘기다.

 “실리콘밸리의 RFID 관련 가치사슬이 ‘연구개발-반도체-안테나-태그-솔루션-서비스’로 형성되는데, 부문별로 특화한 벤처기업들이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반도체를 들여다 안테나·태그를 파는 하드웨어(제조)업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구조로는 2∼3년 안에 중국산 저가 안테나·태그에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창곤 원장은 “우리나라 IT산업계가 실리콘밸리처럼 모든 부문에 걸쳐 가치사슬을 만들 수 없는 형편”이라며 ‘안테나·태그’에서 ‘솔루션·서비스’로 옮겨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국의 하드웨어 산업비율이 15%에 불과한 것처럼 30%에 달하는 우리나라 하드웨어 산업비중을 서비스 분야로 전환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이 같은 노력이 선진국 산업구조를 향한 IT진흥정책 선진화 방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정보사회진흥원은 ‘IT를 이용해 국가 현안을 해결한다’는 목표로 교육·의료 등 다양한 서비스 산업에 IT를 본격적으로 접목하기 위한 정책 어젠다를 확립할 계획이다. 그 첫 단추가 하드웨어 중심 IT 진흥정책에서 벗어나 솔루션·서비스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

◆메가트렌드: 정보선진국의 길

-김성국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skkim21@chollian.net

 45년 광복 이후, 한국사회는 경제발전을 위한 산업화와 정치발전을 위한 민주화의 험난한 길을 각고의 노력으로 개척했다.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뤄, 가난에 찌든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 던지며 당당하게 중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98년 IMF 금융위기에 의한 충격을 잘 대처했거나, 혹은 그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했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선진국의 일원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선진국에로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선두 주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숱한 갈등과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오늘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선진국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서도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대선을 앞두고 한국사회의 미래 비전으로서 선진화가 자연스럽게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도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선진국이 돼야 할까?

 우리는 국토 면적이나 인구 규모를 감안할 때, 이른바 강대국 혹은 패권국가가 되기는 당분간(혹은 적어도 통일이 되기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정치군사적으로 막강한 힘을 갖는 강대국이 돼 보고자 힘에 부치는 무리를 하기보다는 아담하지만 내실을 갖춘 강소국 혹은 강중국을 지향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미국·중국·일본·러시아라는 초강대국들이 서로 각축하는 역사의 현장, 바로 그 중심에 우리 한반도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나 21세기의 진정한 선진국이란 부와 힘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20세기의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약소국을 침탈하여 착취와 억압을 자행함으로써 강대국이 된 나라들은 결코 떳떳한 선진국이 아니다. 따라서 일찍이 김구 선생은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돼야 한다면서 문화국가론을 주창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세계적인 정보강국이다. 각종 정보 인프라와 기술력을 고도화시키면서 ‘아름다운 정보문화’를 창출해내면 세계에서 으뜸가는 정보선진국이 될 수 있다. 최첨단의 정보산업이나 정보기술을 이용하여 돈만 많이 벌려고 혈안이 되어서는 어림없다. 정보를 남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소유의 수단으로 삼는 대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고 도와주는 나눔의 연결망으로 활용하려는 사회가 바로 정보선진국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보를 독점하여 혼자만 이익을 얻으려 하지 말고 모두에게 공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즐길 수 있도록 하자. 인터넷과 사이버공간을 통해 대안사회의 꿈을 펼치고자 했던 카피레프트·오픈소스·프리넷 등의 운동을 더욱 확산시키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위대하지만, 리눅스 참여자들은 착하고 아름답다. 정보선진국은 정보를 착하고 참되게 사용하는 아름다운 사회일 것이다. 오늘날 왜 저명한 미래 예언가들이 심미적 감수성과 통찰력이 21세기의 핵심 키워드라고 주장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