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산하·공공기관]특별기고-FTA 주체간의 바림직한 역할

◆오영호 산업자원부 제 1차관

조선 후기 개화파의 비조(鼻祖) 격인 천재 역관 오경석. 중국을 13차례나 왕래한 그가 ‘해국도지’ ‘박물신편’ ‘영환지략’ 등 신서(新書)를 밀독하며 개방의 의지를 불태운 지 150여 년이 흐른 지금 세계의 시계는 자유무역협정(FTA)에 고정된 채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바야흐로 ‘FTA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뜻 맞는 국가끼리의 경제짝짓기’인 FTA가 한층 가속화되면서 경제와 산업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무한경쟁의 주역으로서 기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경쟁의 방식도 과거 개별기업 간 경쟁에서 시스템 간 경쟁, 나아가 기업 생태계 간 경쟁으로 변화되고 있다.

과거 개별기업차원의 폐쇄적 ‘독생(獨生)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무한경쟁의 거센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게 됐다. 무한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글로벌기업의 육성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환경·기업제도·금융·세제 등 기업을 둘러싼 법과 제도를 시장친화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정부의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긴요한 것은 개별기업이 경쟁사는 물론 수많은 유관 업체들과 전략적으로 상생·협력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업계의 이해를 대변·조정하는 협회 등 경제단체와 공공기관이 시장의 사각지대를 보완해 주는 역할을 재정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경제단체와 공공기관은 특정기업들의 이익을 옹호하거나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니즈를 적극 발굴·조정·지원하고 산업 경쟁력을 고민하면서 비전을 제시하는 적극적 조정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중소기업위주의 디스플레이장비재료협회가 대·중소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디스플레이산업협회로 확대 개편된 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단초를 제공해 준다.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 추진해 온 대·중소기업 간 협력을 넘어 경쟁기업 간 협력인 대기업·대기업간 상생협력을 도모한 것이다.

흔히들 석양녘에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면서 ‘기러기는 서열과 질서를 존중하는 동물’로 이해하곤 한다. 그러나 기러기가 ‘안행형(雁行型)’으로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것은 서열 때문이 아니라 공기 저항을 최소화함으로써 다른 형태의 비행보다 두 배 가깝게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산하·공공기관도 과거의 경직된 자세를 버리고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전장에서 경쟁의 피로감을 최소화하면서도 승자로 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무리를 지어 비행하는 것이 좋은지 꼼꼼히 챙겨보고 도와주는 도우미로 거듭나길 기대한다.youngho5@mocie.go.kr